영혼을 울리는 소울푸드는 없다

by 김대일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모친은 음식 장사를 했다. 노는 꼴을 못 보는 부친의 성화 때문인지 남편을 도와 가정 경제 부흥에 일조하려는 자발적 의지인지는 두 노친네 모두 함구하는 까닭에 진의 파악이 영영 어렵겠으나 당시 남들은 큰맘 먹고 사 먹었을 음식을 삼시세끼 밥 먹듯이 스스럼없이 먹는 호사를 누렸음은 확실하다. 지금은 하와이에 이주해 살고 계신 모친의 손위언니, 즉 나의 작은 이모는 강원도 원주에서 돼지갈비 전문점을 운영했었는데 거기서 기술을 배워 시작한 모친의 음식점 경영 이력은 돼지갈비에서 중화요리, 아구찜을 거쳐 최종적으로 분식점으로 일단락되며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손이 크고 씀씀이가 덜퍽스러웠던 모친이 외상을 남발하고 그로 인해 가정 불화가 끊이지 않아서 음식 팔아 재미를 크게 보지는 못했겠으나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해도 여전히 배 곪는 이들이 허다했던 1980년대 무렵 돼지갈비, 자장면, 우동, 짬뽕, 밀면, 아구찜, 떡볶이, 오뎅, 튀김에 이르기까지 음식점 가게 아들내미로 누릴 거 다 누렸음 그것으로 장사한 보람이 충분했다 자위할 만하다.

그때 그 음식 맛에 인이 박여서인지 어지간히 비슷하지 않으면 맛있다는 말이 쉽사리 나오질 않는다. 오죽하면 마누라가 맛있으면 그냥 맛있다고 말하면 될 일을 "먹을 만하네"란 세상에 다시 없는 어정쩡한 표현을 써서 맛이 있는지 없는지 갈피를 못 잡는 건 물론이고 애써 음식 만든 사람 기운빠지기 딱이라며 역정을 부릴까. 하지만 그건 마누라가 모르고 하는 소리다. 내 입에 착 달라붙는 맛이 아닌데 어쩌랴. 아무리 유혹적인 양념으로 재워 구운들 모친이 1980년대 구워 주던 돼지갈비 맛이 아닌걸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마약이니 돼먹잖게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내놓는 떡볶이라 한들 어릴 적 엄마가 분식점하면서 팔던 떡볶이 맛 근처에도 못 미치는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고.

오래전 중국집 제면기는 면을 뽑으려면 사람이 제면기에 기다랗고 무거운 철막대기를 걸어 펌프질 하듯 찍어눌러야 했다. 당시 중국집 주방장이 하는 걸 유심히 지켜본 나는, 아마 국민학교 3~4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밀가루 반죽을 만들어 직접 면을 뽑아 자장면도 해먹고 우동도 해먹었다. 백미는 밀면이었다. 장마가 질 무렵부터 등장하는 밀면은 별미였다. 차가운 육수에 삶은 돼지고기, 달걀지단을 얹은 밀면을 하루도 빠짐없이 만들어 먹었던 게다. 그때 맛을 들인 밀면은 아마 죽어서야 겨우 끊을 내 영혼의 음식이 되었다.

입맛이 뚝 없어진 요즘, 밀면이 먹고 싶어 환장하겠다. 하지만 어릴 적 추억만 믿고 덤볐다간 지갑 털릴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정도로 밀면은 비싼 음식이 된 지 오래다. 비싸기도 비싸거니와 부산밀면이라는 명성에만 기댄 얄팍한 상술로 부박해진 맛과 양은 비싼 값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화가 날 지경이다. 하여 나는 자꾸 망설인다. 먹고는 싶은데 어디 맘 편히 식도락을 즐길 밀면집을 찾기가 어려워서겠다. 점방 근처 개금골목시장 안에 이름 대면 전국적으로 짝자그르한 밀면집이 있긴 하지만 거긴 이미 과거의 명성을 맘몬에 팔아먹은 지 오래라 가까이 있어도 절대 안 간다.

그러고 보면 말이 쉬워 소울푸드지 영혼을 위로할 그때 그 맛이 그대로인 음식을 찾아 먹는 게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차라리 그때 그 음식을 갈구하는 것으로 고된 일상을 견디는 정신 승리용으로 활용하는 게 더 낫지 싶다. 참고로 '영혼을 울리는 소울푸드'는 없다. Merriam Webster 사전은 (such as chitterlings, ham hocks, and collard greens) traditionally eaten by southern Black Americans>, 즉, "치터링스(돼지고기 소장 요리), 햄 혹스 그리고 컬러드 그린스 등과 같은 미국 남부 흑인들이 전통적으로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결국, soul food는 미국 남부 흑인들이 먹는 '특정한 음식'인 것이다. 우리가 아는 '소울푸드'와 전혀 다르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소울푸드'라는 뜻이라면 comfort food 정도가 어울리는 영어 표현이다. '소울푸드'도 일본어 ソウルフード(소울푸드)에서 온 일본식 영어다. 일본에서 이 말은 (일본에서는 밥과 미소 된장국이 소울푸드다).>라든지 (타코야키는 오사카의 소울푸드다).>처럼 쓰인다. "영혼을 울리는 음식"이나 "각 지방의 특색 음식"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와 완전히 동일하다.(오마이뉴스, 2021.12.14. 기사에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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