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상 장마철로 접어들면 매상이 형편없이 줄어들 게 뻔해 심히 염려스럽다. 그러니 장마전선이 남쪽으로 북상하기 직전이라는 6월의 마지막 주말만이라도 피치를 올릴 요량이었지만 한 사람 일당도 채 안 되는 실적이 이어져 울상일 수밖에 없었다. 마치 고스톱 짜고 치듯 손님 발걸음이 뚝 끊겨 을씨년스러운 정적만이 감도는 점방 안으로 누군가가 스윽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처럼 깎새를 구원해 줄 손님은, 그러나 빚쟁이 독촉하데끼 까탈스러운 요구사항을 늘어놓아 반가웠던 기분은 이내 스러지더니 다음 거조까지 어째 순순하지 않을 성싶어 긴장의 끈을 바짝 조였더랬다.
처음 요구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중간 상고머리로 깎아주되 옆머리 맨살이 안 보이게 신경써달라. 통상 바리캉에다 덧날을 꽂아 밀어올리면 진척이 훨씬 빠를 테지만 덧날 대신 빗을 대고 일일이 곱게 쳐 나가야 하는 작업이 번거로워서 그때부터 실은 골이 났던 게다. 번거로운 만큼 속도마저 더딘 작업을 겨우 끝낸 뒤 머리를 감을 거냐고 물으니 대뜸 다시 손을 보자면 당연히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처음에는 무슨 소린가 했다가 말귀를 곧 알아먹고는 울화가 확 치밀었다. 남들보다 곱절은 신경을 써서 머리 모양을 기껏 만들어놨더니만 다시 손을 보자고? 당장이라도 대거리를 벌이고 싶었지만, 일단 참았다. 보아하니 첫 방문객인 성싶은데 재방문율을 제고하자면 일단 참고 봐야 한다. 가뜩이나 손님 뜸한 시국에 기분 따라 처신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라 말이다. 허나 그 놈의 성마른 성미가 어딜 가겠나. 막상 커트보를 다시 두르고 나니 봇물 터지듯 울화가 성토로 튀어나왔다.
"머리를 다 깎고 나서 좀 미진해 보이면 콕 집어 어디어디를 다시 봐 달라는 손님은 있었어도 하나부터 열까지 싹 다 손을 봐 달라는 손님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손님이 보기에 어떨지 모르겠지만 처음 바리캉을 들 때부터 제가 용을 엄청 씁니다. 그렇게 애를 써서 작업을 끝냈는데 재차, 부분 수정도 아니고 전반적으로 다 수정해 달라고 하면 솔직히 자존심 안 상할 기술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
아닌 말로 커트 요금 5천 원 받고 이 정도 해주면 칙사 대접이지 뭐 그리 까탈을 부리느냐고 더 쏘아대려다가 자칫 주먹다짐으로 번질까 염려스러워 말았다.
느닷없이 깎새가 따따부따하니까 처음에는 놀란 눈치더니 슬슬 골이 난 손님이 "아, 그래요? 내가 오늘 처음 와서 잘 몰랐습니다. 그러니 그 가위 내려놓고, 그만 됐시다"며 빈정거렸다.
피차 말 더 섞어봐야 좋을 거 없어서 손님은 던지듯 요금을 지불한 뒤 자리를 떴고 깎새는 깎새대로 기계적인 배웅마저 흐리마리했다. 후회가 시간차로 달려들더니 이 손님 다시 온다에 내 전 재산과 내 오른팔을 걸겠다며 깎새는 자조했다.
할 말을 했는데도 뒷맛이 전혀 개운치가 않았다. 점방을 열고부터 충동적으로 일희일비하는 일이 잦은 건 개성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해다. 그래 봐야 나만 손해라고 자책하면서도 별일 아닌 사소한 것에 너무 자주 감정을 노출시키는 건 썩 안정된 심리 상태라고 보긴 힘들다. 무엇 때문에 이러는 걸까. 호흡만 가쁘고 반등의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매상, 단지 그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장사가 식상해져서일까. 그도 아니면 사람이 싫어져서일까. 까닭을 찾아 들어갈수록 점입가경인데 쓰린 심사에 고춧가루 붓듯 장맛비만 칙칙하게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