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 친구 종섭의 2주기다. 5년 전 발병한 급성백혈병으로 투병하다 재작년 오늘 훌쩍 떠났다. 지난 삼일절 공휴일, 생전에 같이 어울리던 국어국문학과 91학번 남자 동기 서넛은 그가 떠난 자리가 하도 헛헛해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한 녀석의 객기를 핑계 삼아 다시 모여 식사를 가졌다. 점방 마감하고 합류하기엔 영 어중간해서 나는 불참했다. 하지만 동기 모임의 핵심이자 수장이었던 종섭의 부재를 극복하고 재개했다는 것만으로도 그날 회동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종섭이에게 신세를 많이 졌었다. 한때 뒤웅박 신세로 전락해 자기모멸감에 빠져 위태로웠던 나를 위로해 준 녀석은 종섭이였다. 위로라고는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극적인 브로맨스를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무심하게 불러내 그저 소주 한 잔 따라주며 세상 그렇게 살지 말라고 따끔하게 쏘아대는 게 다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녀석이 나는 무척 고마웠다. 앞뒤 재지 않고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설령 친구라고 해도 말이다.
그런 녀석이, 인정머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먼저 훌쩍 떠나버린 녀석이 6월만 되면 유독 그립다. 녀석과 마시던 소주 맛은 녀석이 떠난 뒤로 예전 맛이 아니라서 다른 누구를 앞에 두고 대작하기가 쉽지 않아 차라리 혼자 마시곤 한다.
최근 몇 년 간 단 한 번도 통화를 시도하지 않은 연락처를 하나씩 지워 나갈 때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존재의 가벼움을 절감한다. 절연의 이유는 갖가지다. 물질이 정신을 능욕해 결딴이 나는 파국이든 인간 본연의 피할 수 없는 유한성에서 기인하든 한때의 교분은 속절없이 변질되고 소멸되기 십상이다. 하여 나는 결벽증 환자처럼 친구란 단어를 점점 멀리 하고 새로운 접촉을 시도할 일은 앞으로 더더욱 없겠다. 그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솎아내 말끔히 지운 홀쭉한 연락처로 슴슴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