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 크기 12pt로 맞춰 놓고 휘뚜루마뚜루 끼적인다. A4 용지 2매 내외인 분량의 장편掌篇이 완성되면 내 SNS에 게시한다. 그러기를 3년. 지루하게 사는 내 일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긴장할 때는 PC 모니터 앞에서 무정하게 껌뻑거리는 커서와 눈싸움을 벌일 때다. 전심전력을 기울여 오늘 써야 할 분량을 기필코 달성하겠다는 투쟁심에 이글거리면서 말이다.
글은 자기만족인 게 맞다. 글을 써내려갈 때 나는 다른 무엇을 할 때보다 재미와 오르가슴을 느끼니까. 허나 글 때문에 자격지심이 일기도 한다. 애를 써도 늘지 않는 어휘력, 어법에 맞지 않는 국적불명의 문장 구성,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마주하면 아예 포기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심상하고 밋밋한 일상日常이 실은 앞으로 내가 살 생존 시간이 야금야금 떨어져 나가는 부분이라고 한다면 절대 허투루 탕진할 수가 없고, 이른바 ‘순간을 영원’ 같이 다루자면 기록이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재주(픽션은 내 능력 밖이다)이고 보니 포기가 곧 절명인 결말은 절망적이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당대의 문호가 될 건 아니니까 쉬엄쉬엄 천천히 대신 야무지게 내 문장을 다듬어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글은 자기만족이니까.
여기에 수록된 글들은 블로그, 페이스북, 밴드에 업로드한 게시물 중에서 순전히 내가 내키는 걸로만 골라 어색한 부분은 고치고 읽기 편하게 다듬는 교정 작업을 나름대로 거친 뒤 연대기순으로 배치한 게 특징이다. 따로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인용된 신문기사 발행일을 보면 대충 그 시기를 짐작할 수 있고 아무래도 모르겠거든 개의치 말고 그냥 편하게 읽으면 된다. 어차피 에피소드 간에 심각한 연관성이란 게 별로 없으니까. 단, 왜 이 따위 글을 얘가 지었을지 궁금할 분들을 위해서 최근 몇 년 간의 내 이력을 아래에 사족으로 달아 두겠다. 개연성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내가 보기에 나는 무료하다. 그렇다고 남들한테까지 무료해 보이기는 싫다. 그러니 내가 무료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리려면 내가 아는, 나를 아는 사람들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우리 집 뒷동산 달맞이언덕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싶지만 요즘같이 역병이 창궐하는 시절에는 미친 놈 소리 듣기 딱이다. 이 시국에 내가 무료하지 않다는 걸 알릴 방법이 정녕 없단 말인가. 지인知人들에게 아뢰나니, 꿩 대신 닭이라고 꽃놀이 대신 내가 드리는 이 글 모음집이 내가 당신을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고 당신도 나란 사람이 그리 무료하게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랍니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 Si vales bene valeo.
2020년 4월 책이라는 걸 내면서 내건 머리글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이 무료한 건 매한가지고 무료해 보이기 싫어서 글을 끼적이는 것도 여전하다. 그러니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별로 없다.
글이라는 것에 발이 달렸다면 3년이면 서울-부산 왕복을 해도 수십 번은 더 가고도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서 있는 그 자리에서만 맴맴 제자리걸음하다 세월 다 버린 꼴이니 구제불능이 따로없다. 일신우일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새 발의 피 만치 나아지는 게 보이면 그 재미로라도 계속 뭉그적거리겠지만 쓰고 난 글을 볼 적마다 '안 쓰고 말지'라는 불쾌감이 자꾸 들면 턱밑까지 차오른 택이다.
역량이 부족하다면 부족분을 메울 지적 노력이 시급하잖는가. 청년 시절 우리말 사전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고 외운 낱장을 ‘씹어 먹어가며’ 공부했다는 고故 김소진 소설가까지는 아니더라도 무료함을 달래는 유일한 낙이라면서 끼적거리는 짓을 이어가겠다면 지금같이 돼먹지 않게 글을 쓰면서 하루하루를 허비하느니 무엇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대안을 마련하느라 심사숙고하는 게 더 낫다. 하여 요즘 고민 중이다. 연명하듯 가까스로 지면을 채우는 거지발싸개만도 못한 짓을 잠시 멈춰야 할지 말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