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딱
이상국
이웃이 새로 왔다
담너머 능소화 뚝뚝 떨어지는 유월
이삿짐 차가 잠깐 사이 그들을 부려놓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짐 부리는 사람들 이야기로는
서울에서 왔단다
이웃 사람들보다는 비어 있던 집이
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에게
아빠는 뭐하시냐니까
우리 아빠가 쫄딱 망해서 이사 왔단다
그러자 골목이 갑자기 환해지며
그 집이 무슨 친척집처럼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 누군가 쫄딱 망한 게
이렇게 반갑고 당당할 줄이야
(이 시의 핵심어는 시 제목이기도 한 '쫄딱'이다. 신통하게도 제목만으로 시를 가늠할 수가 있다. 그리고 시 안에서 계집아이가 '쫄딱'이라고 선언했을 때 시인이 뭘 읊고자 했는지 그 저의를 완전히 간파했다.
이렇듯 부사는 오묘하다. 부사 하나로도 문장 전부를, 시 전부를 그 영향력 안에 둘 수 있는 강한 힘을 지녔다. 그래서 나는 부사를 좋아한다. 그래서 열심히 부사를 수집하고 써먹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문제는 내면화니까. 내 것으로 만들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만 있다면 문장은 훨씬 풍성하고 맛깔나게 진보할 게 분명하다. 이 시는 그 가능성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