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주, 종조부 두 분 기제사엘 하루 걸러 잇달아 참석했다. 제삿집으로 사촌들이 옹기종기 모이는 게 집안의 보기 좋은 내력이었지만 역병이 창궐할 무렵부터 참석이 폐가 되는 물정인 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끊었다. 그러니 명절이야 두말하면 잔소리인 게고. 마스크를 안 써도 도끼눈으로 노려보는 이가 없는 세상으로 돌아와서 은근히 전통에 집착하는 부친은 부득이하게 단절되었던 가풍을 다시 잇겠다는 의지를 일가붙이에게 강하게 표명하기 위해 맏아들을 참석시킨 게다.
친척들로 북적거리던 제삿날만 떠올리고 찾아간 내가 너무 순진했다. 개금 작은 할아버지댁, 용호동 막내 할아버지댁 할 것 없이 재종들은 코빼기도 못 보겠고 낼모레가 칠순인 당숙과 당숙모들만 덩그러니 제삿상을 지키고 있어 휑하기 그지없었다. 제 식구들만 모여 단출하게 지내겠노라 미리 공지를 했다는데 초대받지 않은 군식구 괜히 끼어든 모양새라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일부러 찾아준 종질을 반기지 않은 이는 없었지만 말이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당연하다고 여겼던 의례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어색하기 짝이 없어 부쩌지를 못하는 건 내가 너무 과민한 탓이었을까.
지난 3~4년이 미증유의 시대임은 분명했지만 물리적 시간만 경과된 건 아니지 싶다.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나 비대면이 일상이 되었던 역병의 시대는 사람들한테 편의와 안전을 가져다 줬지만 사람들 간(친족들 간)에 이룩했던 끈끈한 유대감을 희석시키는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했다. 그건 감정의 생채기다. 한번 생채기가 난 자국은 쉽게 아물지가 않는다. 하여 직접 얼굴을 보며 만나지 않고도 기껏 영상 통화 혹은 실시간 채팅창 글 몇 줄로 안부를 갈음하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치부하는 기계적 발상이 점점 지배적이게 되었다.
바야흐로 훈훈했던 시절이 역병 탓에 산산조각이 되어 날아가 버린 꼴이다. 꼭 역병 탓만은 아닐 게다. 언제고 그리 될 일을 역병이 재촉했는지 모를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