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 집에서 가까운 SSM 슈퍼마켓에 들러 큰맘 먹고 '시즈닝 부채살스테이크' 두 덩어리를 사다가 구워 먹었다. 배포가 쪼잔한 탓에 한없이 비싸 보이는데다 미국산 소고기라 꺼림칙하기도 해서 평소에는 눈요기만 하고 말지만 그날은 그 스테이크라는 게 하도 땡겨서 눈 질끈 감고 질러 버렸다.
겉으로 봐서는 얼마 안 돼 보이던 게 구워 조각을 내니 양이 제법 나왔다. 반주로 따라 놓은 막걸리를 홀짝거리면서 두어 조각 입에 넣어 씹는데 어째 좀 허전했다. 냉장고에서 쌈채소와 쌈장을 꺼내 스테이크로 쌈 싸 드셨다. 아스파라거스 서너 줄기가 덤으로 따라오긴 했지만 양파와 마늘을 구워 쌈에 곁들이는 게 풍미를 더했다. 쌈을 싸서 먹는 고기와 아닌 고기가 따로 나눠져 있을 리 없겠지만 스테이크로 쌈 싸 먹는 게 누가 봐도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잡순 까닭은 육식과 채식을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나름대로 균형잡힌 식사를 누리기 위해서였다.
쉬는 날 스테이크 먹은 걸 자랑삼을 글을 써볼까 궁리하던 차에 이 년 전쯤 한 역사학자가 쓴 <육식은 죄악이 아니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칼럼이 떠올랐다. 채식이 생명을 위하는 길이라는 관념은 모든 생명은 윤회하므로 동물을 먹는 건 사람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고대 인도의 산물에서 비롯되었고 식물은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과학이 발달한 지금은 식물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아니 채식이 생명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필자는 꼬집는 대목에서는 무릎을 탁 쳤다. 논리 전개가 통쾌하기 그지없어서! 그러고 나서 육식이 꼭 죄악이 아니라는 점을 우리나라 식문화에서 육식이 의미하는 바를 들어 설명함으로써 설득력을 확보하는 영리함을 발휘한다.
고기 없어서 식음까지 전폐할 편식은 아니다만 적지 않은 나이에 남의 머리 매만지는 깎새로 온종일 애면글면하고부터는 기력이 하루하루 달라지는 걸 절감한다. 그러니 원기 보충한다는 핑계로 고기타령인 날이 잦아졌다. 늙은이'옹翁'은 원래 마흔 넘은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칼럼에 쓰여져 있다. 영양이 부족했던 과거와 요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줄 알지만 '백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이 쉰을 갓 넘겼을 뿐인데 기력 쇠한 늙은이 취급을 받는다면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나는 늙었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오늘도 육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