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증후군

by 김대일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스타워즈> 프리퀄에서 다스 베이더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로 유명하다. 그는 <스타워즈>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골든글로브 시상식 남우조연상 후보에까지 오른 촉망받는 배우였다.

모두가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2002)을 기대했다. 다스 베이더라는 악당으로 거듭나는 아나킨 스카이워커 역은 아무나 맡을 수 있는 배역이 아니었다. 노예 출신 아나킨은 제다이로 훌륭하게 성장하지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분노와 불안 등 복합적이고 분열증적인 마음의 진앙을 겪으며 악의 세력에 영혼을 바치고 마는 남자다.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이라 할 법한 캐릭터다. 바로 전 해 골든글로브 후보에 오른 촉망받는 젊은 배우에게는 경력을 단숨에 끌어올릴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다. 기대는 영화가 공개되자 무너져 내렸다.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에서 그의 연기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발 연기’였다.(<김도훈의 낯선 사람 헤이든 크리스텐슨-‘스타워즈’가 독이 된 불운의 다스 베이더>, 한겨레신문, 2023.06.10.에서)​​

2005년 개봉한 <스타워즈: 클론의 습격> 속편 <스타워즈: 시스의 복수>에서도 여전히 어색하고 뻣뻣한 연기를 이어간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꺼져가는 그의 경력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해 몇몇 영화에 출연했지만 실패했고 이후 잊혀졌다. 2015년 인터뷰에서 <스타워즈> 출연이 그에게 ‘가면 증후군’을 안겼다고 고백했다. 가면 증후군은 갑작스러운 성공을 거둔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는 심리적 장애다. “<스타워즈>가 저에게 더 많은 기회와 화려한 경력을 안겨주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저에게는 너무 벅찬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도 한때는 잘나갔지’라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같은 칼럼에서)

필자는 가면 증후군을 얘기하기 위해 헤이든 크리스텐슨을 끌어들였다고 고백한다. 필자 역시 매체 편집장을 맡았던 5년 내내 가면 증후군을 겪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이른 나이에 갑자기 높은 자리를 맡게 된 사람은 두 종류로 나뉜다고 했다. 스스로의 성공에 도취되거나, 혹은 스스로의 성공에 압도된다. 도취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압도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것은 중책을 맡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라면서.

그 고민이 끝없이 계속되는 순간 마음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다. 바닥으로 떨어진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필요한 건 잠시 멈추는 것이다. 도취된 사람들은 멈추지 않는다. 압도된 사람들이 멈추는 건 영 부당한 일이다. 어쩌겠는가. 한국 정치인들은 대부분 전자인데, 우리 모두가 한국 정치인들처럼 살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멈추었다. 할리우드를 떠났다. 자신이 소유한 농장에서 거주하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같은 칼럼에서)

이룬 바가 크건 작건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건 적절한 처세라고 본다. 살면서 맛보는 성공의 달콤함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할까. 눈앞의 성공이 실은 운칠기삼의 요행일 뿐이라고 치부하면서 혹시 생길 실패의 충격을 미리 완화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로 가면 증후군이 발동된다면 꽤 괜찮은 엄부럭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칼럼 필자가 밝힌 대로 압도되어 바닥까지 떨어져 내리겠다 싶으면 잠시 멈춰야 한다는 것. 멈춘 뒤 원점에서 냉철해진다는 것은 성공보다 성공 뒤에 도사린 실패의 후폭풍을 더 염려한다는 의미겠다. 저잣거리의 한낱 깎새조차도 '지금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하는 회의를 거둔 적이 없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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