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지고 싶은 손님

by 김대일

손님과 척지고 싶은 장사치가 어디 있겠냐마는 매상 줄어도 좋으니 제발 안 왔으면 하는 불청객이 분명 있다. 대놓고 오지 말라고는 말 못하지만 얼굴 가린 마스크로도 숨길 수 없는 심상찮은 낌새를 제 발 저린 도둑놈인 양 진작에 알아차리는 블랙리스트 손님이 있긴 하다. 여기 말고 깎을 데가 없을쏘냐 그길로 발길 끊은 손님이 있는 반면에 '세상 신경쓸 게 어디 한두 가지랴. 그깟 깎새 박대야 무시하면 그만'이라는 듯 꿋꿋하게 드나드는 독한 손님도 없지 않다.

희수를 맞은 그 노친네는 작년 개업한 직후부터 여태 점방을 드나드는 진상 단골이다. 앞으로 매상 증대에 중추적 역할을 할 단골로 자리매김할 테니 머리는 이런 식으로 깎고 염색은 저런 식으로 해 달라며 주문이 요란했던 노친네가 초면에 썩 마땅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기록으로 남겼을까(<표정이 왜 그래>, 2022.05.03).

한 몇 달 점방 출입이 뜸하길래 입맛에 맞는 점방을 새로 뚫었는갑다 묵은 체증 가시듯 속이 다 후련했는데 쭈뼛쭈뼛 다시 드나들더니 요새는 주기적으로 염장을 지르곤 한다. 야료를 부리는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졌다는 소리겠다. 그것도 진화라면 진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목에 난 상처를 일단 보여준다. 그러고는 지난번 머리 깎을 때 커트보를 세게 짜매 생긴 게 분명하다면서 깎새 부주의를 질타한다. 질타는 하되 깎새 눈치를 살피는 걸 잊지 않는다. 꼭 우는 아이 달래가며 꼬집는 형국이다.

깎새 입장에서 보면 그 상처란 게 과연 그때 생긴 게 맞는지부터가 의심스럽고 수백수천 명을 다뤘지만서도 단 한번도 안 생긴 불상사가 유독 그 노친네한테만 생긴 까닭을 되묻고 싶지만 맞서 본들 노친네 간사위에 말려 개싸움으로 전락할 게 뻔해 아예 입을 봉해 버렸다. 제발 아니 오면 안 되겠냐는 애원만 머릿속에서 맴맴 돌 뿐.

지난 주 머리를 깎고 있는 중에 염색은 오는 월요일에 할 터이니 신경 좀 쓰라고 종놈한테 분부 내리듯 하더니 당겨서 일요일에 불쑥 나타났다. 일요일이건 월요일이건 매상 올려 주겠다는데 무슨 상관이겠냐마는 이럴 거면서 굳이 날짜를 박을 건 뭐고 얼마나 대단한 행차라고 없는 생색까지 다 내는가 싶어 칙살스럽기가 그지없었다.

오랜만에 일요일 손님들로 점방은 바글대는데 볼일 다 마쳤으면 기다리는 손님 생각해서라도 얼른 자리를 비켜 줘야 하건만 '커피나 마시고 갈까' 믹스 커피 한 잔 타서 대기석 한 자리까지 전세를 내다시피 다 마실 때까지 꼼짝도 않는다. 그 천연덕스러움 때문에 천불이 더 났다. 깎새더러 엿 먹으라는 게 분명하다. 제 몸통에다 미운털을 알아서 박고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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