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의 전범

by 김대일

“한 사람이 평생을 두고 한 가지 테마를 탐닉한다는 것은 정말이지 장엄한 일”


2017년 가을로 기억하는데 『Across The Universe: 비틀즈 전곡 해설집』(한경식, 안나푸르나)이라는 책에 단 음악평론가 강헌의 추천사가 덕후하면 퍼뜩 떠오르는 상찬이다. 40년을 비틀즈에 빠져 산 한 일반 회사원은 비틀즈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새벽에 일어나 회사 출근 전 3시간씩 글을 쓰는 수고를 7년 간 이어온 끝에 1,112쪽에 달하는 압도적인 ‘베개책’을 펴내게 된 것이다. 비틀즈만을 한정해도 수많은 관련 서적이 나와 있고 깨알 같은 정보가 다 기록된 책들이 즐비한 일본에서조차 “이런 책은 찾을 수 없다”라고 단정할 만큼 ‘기록’이란 측면에서도 기념비적이라는 평을 받는 이 책에는 정규 앨범에 담긴 213곡과 그밖에 라이브 앨범 등에 담긴 69곡을 더한 282곡에 대한 정보가 모두 망라되어 있다고 하니 그야말로 우주를 가로지를 만하다.

그해 한 일간지에는 당시 55세였던 저자와 나눴던 인터뷰가 실렸는데 내용 중에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를 소개하는 대목은 인상적이었다. 이른바 '덕후'라고 불리는 마니아들이 그러하듯 저자인 한경식도 고1 때 처음 비틀즈를 만나 '그냥 좋아서' 그들 노래에 빠졌다. 그러다가 "왠진 모르겠지만 40대가 되기 전에 뭔가 하나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필에 매달렸다고 한다. 전신 격인 『더 비틀즈 콜렉션』(한경식, 동녘라이프)이 2001년에 나왔으니 20대에 막연히 생각했던 것을 40대 전에 실행에 옮긴 건 분명해 보인다.(<‘비틀즈’열혈팬 40년…1112쪽 ‘베개책’으로 결실>, 한겨레, 2017.10.30. 참고)

몰입하고 숭배한 대상에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고 치열하게 분발한 끝에 저자는 스스로 정해 놓은 기한 내에 완결을 봤다. 40대가 되기 전이라는 '기한 내'가 숭배의 대상에 누를 끼치는 일체의 하자를 불허하겠다는 견결한 의지의 표명이자 마침내 무결한 낙착을 보고자 스스로를 을러멘 엄격한 마지노선에 다름 없기에 저자는 '덕후의 전범'으로 추앙받을 만하다. 덧붙여서 2001년 『더 비틀즈 콜렉션』 이후 개정판 격인 『Across The Universe: 비틀즈 전곡 해설집』이 나온 2017년에 이르기까지 '비틀즈 테마의 장엄한 탐닉을 위해 압도적인 성실함의 역사役事'를 새삼 기울였던 저자에게 ‘무관의 스페셜리스트’란 칭호를 부여하는 게 결단코 과분하지 않다.

오래된 기사를 들먹이면서까지 내가 스스로한테 주문을 거는 건 정작 무엇인가. '그냥 좋아서'란 부분에 밑줄을 쫙 그어 표시를 해 둔다. 이는 피상적이고 타성적인 악습을 떨쳐 버릴 중요한 단서가 되겠다. '장엄한 탐닉을 위한 압도적인 성실', 즉 덕후의 행동 요령을 습득하는 게 최종적인 목적이 되겠지만, 그 전에 우선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그냥 즐겨야 한다. 저자 인터뷰 말미에 비틀즈 282곡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으랬더니 <인 마이 라이프In My Life>라고 했고 그 이유가 참 단순했다.

"그냥 들으면 편안해요. 제가 쉬운 노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릇 모든 공교함은 졸렬함에서 비롯된다는 노자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떠오르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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