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탠로드를 빠져나오며
박진규
달이 저 많은 사스레피나무 가는 가지마다
마른 솔잎들을 촘촘히 걸어놓았다 달빛인 양
지난 밤 바람에 우수수 쏟아진 그리움들
산책자들은 젖은 내면을 한 장씩 달빛에 태우며
만조처럼 차오른 심연으로 걸어들어간다
그러면 이곳이 너무 단조가락이어서 탈이라는 듯
동해남부선 기차가 한바탕 지나간다
누가 알았으랴, 그 때마다 묵정밭의 무들이
허연 목을 내밀고 실뿌리로 흙을 움켜쥐었다는 것을
해국海菊은 왜 가파른 해변 언덕에만 다닥다닥 피었는지
아찔한 각도에서 빚어지는 어떤 황홀을 막 지나온 듯
연보라색 꽃잎들은 성한 것이 없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진 청사포 절벽을 떨며 기어갈 때
아슬아슬한 정착지를 떠나지 못한 무화과나무
잎을 몽땅 떨어뜨린 채 마지막 열매를 붙잡고 있다
그렇게 지쳐 다시 꽃 피는 것일까
누구나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한다
(미포오거리를 기점으로 송정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달맞이언덕길을 5분쯤 걷다 보면 문탠로드로 빠진다. ‘달빛을 받으며 가볍게 걷는’ 왕복 2.2킬로미터 문탠로드 입구에는 시 한 수가 이정표처럼 서 있다. 시가 주는 감흥이 크건 작건 문탠로드를 거닐자면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느껴지는 시.
바다와 맞닿은 문탠로드 정경은 보지 않은 이는 못 느끼는 이국적인 면이 있다. 그런 문탠로드를 시는 고스란히 담아냈다. ‘우리 곁의 자연에서 가족, 인간관계 등을 읽어내며 놓칠 법한 삶의 찰나를 끄집어내’(부산일보)거나 ‘자연과 친구처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신통한 능력’(하상일 문학평론가)을 보유한 시인을 통해서 말이다. 부산으로 휴가 올 예정이면 문탠로드와 문탠로드 시를 꼭 접해 보시라 강추.
마지막 시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믐이 지나야 신월新月이 되는 법. 그래서 나는 오늘도 ‘문탠로드를 미끄덩하고 빠져나와 그믐처럼 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