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이 떠오르는 친구

by 김대일

주재원으로 물 건너가면서 아예 식구들까지 몽땅 데려간 친구가 둘 있다. 어제 언급했던 J와 한 대기업 대전 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다 3년 전에 가산을 다 정리해 역시 중국으로 넘어간 K다. K는 국내 굴지의 화학 분야 대기업에서도 썩 잘나가던 중견이었는데 뭘 잘못 밉보였는지 나이 오십이 다 돼 중국으로 쫓기다시피 넘어가게 되었다. 녀석과는 같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알게 된 고등학교 동기다. 땅딸막한 몸집과는 달리 배포 두둑한 호걸 기질이 돋보이는 녀석이다. 게다가 티나지 않게 사람을 끄는 인싸의 면모까지 갖춰 동기들 사이에서도 평판이 후한 편이다.

하지만 그 평판이 다니는 회사 평판으로까지는 이어지지가 않는 건지 아니면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상관한테 걸려도 단단히 걸린 건지 가리늦게 가시밭길을 걷게 됐다. 아무튼 중국 떠나기 직전 본가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해운대 미포 어귀 한 편의점 앞에서 맥주캔을 나눠 마시며 석별을 정을 나눴던 3년 전 녀석은, 이런 표현을 쓰긴 정말 싫지만 유배 떠나는 죄인인 양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자당께서 편찮으셔서 만나기로 한 약속을 취소한 J에 대해 몇 자 끼적이면서 불쑥 K가 떠오른다. K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J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아마도 함께 어울리며 쌓았던 추억의 무게가 훨씬 묵직해서일 게다. K하면 대전 냉면이 겹쳐지고 녀석과 먹었던 그때 냉면 맛은 평생 기억에 남을 별미라 글로 남긴 적이 있었다. K는 잘 지내나 모르겠다.


얼굴 함 보쟀더니 시험장까지 달려온 대전 사는 친구. 결과야 팔자고 허기나 우선 달래자며 데려간 사리원. 냉부심이 뭔지 잘 모르지만 입때껏 냉면이랍시고 먹었던 그 어떤 것들보다 오늘 냉면이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새벽 기차 타고 올라온 데다 시험시간 120분을 꽉 채우는 근래 보기 드문 애살을 부렸음에도 뒷맛이 영 개운찮아 더 고단한 심신을 일거에 무장해제시켜 버린 그 미친 냉면 맛은, 대전에서 소문난 평양냉면 본연의 맛이건 말건 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은 먼 데 사는 친구 녀석의 훈훈함이 슴슴한 냉면 육수와 잘 섞여 내 입맛을 홀렸을지 모를 일이다.​(<대전 냉면>, 2019.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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