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를 달동네로

by 김대일

여름 휴가를 언제 갈 거냐 물으면서 어디로 갈 거냐고도 물어 온다. 쉬는 날 내 몸은 내 것이라 아니라서 결정권자한테 물어보고 답하겠노라 얼버무리고 만다. 만약 내게도 뚝심이라는 게 있다면 부산 곳곳에 행선지를 정해 놓고 하루 점두룩 싸돌아다니고 싶다.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는 줄 알기에 그저 꿈으로 묵혀 둘 뿐이다.

부산 여기저기를 배회하려고 점찍어 둔 곳 중에는 달동네가 여럿 있다. 영도와 수정동 산복도로를 한가하게 거닐고 싶고 우암동 소막마을을 다녀온 뒤 <내호 냉면>에서 씨언한 밀면 한 그릇으로 한 끼 해치우고도 싶다. 그리고 부산 당일치기 코스의 대미는 물만골에서 장식하고 싶다. 물만골은 황령산 북쪽 골짜기로 맑은 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수량이 풍부하게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6·25 전쟁 당시 군사 기지용 도로 개설과 1953년 농장(방목장)이 설치되면서 거주자가 늘었고 초량동 부산항 매축지 철거민들이 이주해 오면서 본격적으로 마을이 형성되었다. 1990년대 강제 철거 집행 반대 투쟁을 벌이면서 주민들이 ‘물만골공동체’를 만들어 재개발 사업을 중지시켰고 이후 주민자치, 환경운동 등을 실행하는 등 실험적인 생태 마을이 되었다.

최영철은 물만골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하다. 시인은 중심이 아닌 변방 ‘졸(卒)’들의 슬픔과 절망, ‘졸의 힘’을 묶어 그들 삶의 끈적거림과 전율을 시로 드러냈다. 시인은 물만골에서 중심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음지의 근육’을 봤고 변방만이 가지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일광욕하는 가구>, <박새>는 물만골 졸들의 낡고 초라함까지 껴안는 따뜻한 단어들로 가득하다.​


​박새

최영철


아침마다 물 받으러 가는 마을

무허가로 들어와 어우린 자연 부락 능선 따라

이른 아침 가방 메고 푸드덕 산을 넘는 아이들

짹짹짹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뒷산 보고 인사 꾸벅

지지쌕쌕 구구단 중얼대며

아직 단잠 든 평지 친구 머리맡 훌쩍

오늘은 뭘 읽을까

오늘은 뭘 쪼을까

잠 깬 청설모 뒤를 쫓아

푸드덕 산을 넘는 아이들


일제강점기 서울로 몰려온 이농민들이 도시 외곽에 토막(土幕, 흙으로 벽을 적당히 만든 후 얼기설기 지붕을 얹은 간이주택)을 짓고 살게 되면서부터 근대화 과정에서 빈민촌의 역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방과 한국전쟁 후의 판자촌과 하꼬방(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箱(はこ, 하코) + 방), 1960~1970년대의 달동네·산동네, 1980년대의 벌집·닭장·비닐하우스 등이 우리나라 빈민촌의 대명사들이다. 특히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잘 보인다고 해서 생겨난 ‘달동네’란 용어는 1980년대 TV 일일연속극 <달동네> 방영 이후 널리 쓰였는데 가난과 소외의 생활공간이면서 민중들의 삶과 애환이 잘 담겨 있는 개념으로 전국적·대중적으로 사용되었다.

부산이란 도시의 속살 깊이 파고들 작정이면 달동네부터 찾아가야 한다. 시간마저 비껴간 듯한 그 공간을 걷다 보면 유명 관광지에서는 절대 못 느끼는 쩐 내 물씬 풍기는 진짜 적나라한 부산을 발견하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 초라한 현실일망정 그것조차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 줄 아는 부산사람들의 해맑음이 삶의 반전을 꾀하려는 당신의 뒤통수를 여지없이 갈길지 또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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