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인생은 없다. 지향하던 목표가 도중에 꺾이고 다시 꺾이어 변형된 뜻밖의 결과가 나의 현재다.
한국이라는 주변자의 역사적 체험에서 출발해 존재의 보편적 실상을 포착하는 것을 철학의 주제로 삼아 그로부터 'X의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지평을 제시한 철학자 박동환(알라딘 저자 소개)의 『X의 존재론』(사월의책, 2017)에 나오는 문구를 나는 몹시 아낀다. 하지만 책은 아직 읽지 못했다.
철학책을 집어들라치면 늘 망설여진다. 이왕 읽겠다 마음을 먹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진도를 빼야 하고 그 재미로 책을 읽어나갈 테지만 철학책은 그게 버겁다. 독해의 난맥상에 빠져 마음은 어수선산란해지는데다 자존감을 고취하려고 책을 들었다가 되레 자기혐오에 빠질 공산이 커 그게 또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의 존재론』을 주문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사랑하는 문구가 박혀 있는 책이기도 하면서 그 문구에 기대어 썼던 예전 글이 과연 합당하게 쓰여졌는지 확인하고 싶어서기도 하다. 이를테면 이런 글이다.
그와는 공통점이 많다. 자치동갑에 학교만 다를 뿐 ROTC 출신인데다 한창 나이 때 보험업 주변을 어슬렁댄 전력도 비슷하다. 지하철 2호선 장산역 반경 1킬로미터 안에 살고 있는 해운대 신시가지 입주민이라는 유유상종도 유대를 이어가는 데 한몫 거들었다. 그는 15년 넘게 밥벌이하던 외국계 생명보험회사 보험설계사를 작파하고 건설 일용직 파견업체(직업소개소)에 발을 담가 현재 성업 중이다.
보험 영업 바닥에서 활약할 때 우연한 계기로 안면을 텄으니까 알고 지낸 지 10년은 넘었다. 지척에 사니 아주 가끔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곤 한다. 그는 점잖고 신중한 사람이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힘은 상대방을 정중하게 대해주는 데서 나온다.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처신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무례를 미연에 방지하고 덩달아 신중해질 수밖에 없게 만드는 효과로 톡톡하다. 허나 몇 순 배 돌아 얼큰해지자 시동 걸린 그는 어김없이 취중진담을 늘어놓는데 그럴 적마다 격조니 품위 따위와는 판이한 모습을 드러낸다.
일단 그는 야무지다. 품은 야망이 크고 당장 얻은 작은 이익에 만족하지 않는다. 심중에 품은 야망을 특유의 저음으로 풀어 내면 마치 원대한 사업가가 미래 청사진을 브리핑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나는 그가 외유내강인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가까이 두면 듬직하기야 하겠지만 때때로 상대를 떠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편치 않은 이중적인 느낌을 주는 사람.
한번은 주변에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관찰한 뒤 내린 결론이라면서 술도 안 마셨는데 진지해졌다. 수단 좋은 아버지 직업을 고대로 물려받은 자식일수록 대를 이어 부가 유지된다나. 예를 들어 아버지가 세무사인데 그 아들도 세무사 시험에 합격해 아버지 사무실을 물려받는다. 그러면 아버지 거래처가 자연스레 따라온다. 아버지 전공을 따라 의사가 된 아들, 사업체를 상속받는 아들 따위가 다 한통속이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무임승차 격이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좋은 직업 구하려다 이도 저도 아닌 것보다는 훨씬 안정적이면 효율적이다.
자기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밑천이 없어서 오로지 자수성가만이 살 길이고 초등학생인 외아들이 이 험한 세상을 구김살없이 살아가는 데 든든한 밑거름이 되는 것이야말로 아비 된 자의 막중한 도리가 아니겠냐고도 역설했다. 투쟁적인 처세와 냉철한 현실 감각은 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터이지만 작정하고 설파하는 부강론에는 몸서리가 쳐졌다.
또래 중년남이 가질 법한 보편적인 고민이기에 일견 수긍을 하였지만서도 ‘그렇게 살다가 네 인생은?’ 하고 되묻고 싶어서 아주 혼났다. 아들에게 물려줄 게 뭐가 됐든 간에 물려줘도 될 만큼 쟁일 때까지 애면글면할 아비는 누가 위로해 주나. 새벽 5시 반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근 12시간을 꼬박 일하며 갖은 스트레스를 견디면서 버티는 지금의 직업소개소도 만만찮은데 말이다. 하고 싶고 원하는 게 있지만 느긋하게 누릴 수 있을 때까지는 유보시키겠다는 건 역설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겠다는 말뜻은 알아들었지만 그 '느긋하게 누릴 때'가 언제인지 선명하게 짚을 수 있는지, ‘이 정도면 되얐다!’하는 시점에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과감하게 멈춰 세우고 미련없이 하차할 수 있는지, 그러다 정작 한 줌도 안 되는 여생조차 소진되는 건 아닌지 울림없는 목소리로 나는 내내 묻고 또 물었다.
한겨레신문 고명섭은 박동환의 저서를 두고 이런 칼럼을 썼다.
철학자들에게도 야심이 있어서, 존재론의 영역에서 이 야심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목표로 삼는다. 그 야심을 실현하려고 철학자들은 철학사를 더듬어 올라가는데 대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아니면 공자와 노자가 활동하던 ‘축의 시대’에서 멈춘다.
철학자 박동환의 근작 은 우리의 철학적 상상력의 변경을 아득히 넓혀놓는다. 박동환은 고작 2, 3천년의 철학사 지식으로 인간과 세계의 비밀을 캐보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다. 비밀은 훨씬 더 깊은 곳에 묻혀 있다. 몇천년 혹은 몇만년 인류 역사의 두께는 표면에 지나지 않는다. 박동환은 그 비밀을 탐사하려고 까마득한 과거로 눈을 돌린다. 인류 탄생 이전, 아니 원시생명체가 출현하고 더 멀리 우주가 태어난 시점까지 올라간다. 원자들이 결합해 분자가 만들어지고 분자들이 연결돼 생명체를 이루고 생명체 안의 유전정보(DNA)가 수십억년 이어져 오늘의 인류에 이르렀다. 인간의 내부에는 그 장구한 세월 동안 계속된 우주와 생명의 모든 역사, 진화의 모든 기억이 응축돼 있다. 그 영원의 시간이 집적해놓은 기억은 도무지 인간의 지혜로는 다 알 수 없다. 박동환은 그 알 수 없는 기억의 비밀을 ‘엑스(x)’라고 부른다.
인간 각자는 영원의 시간이 흘러와 머무는 체류지이자 수십억년 시간이 쌓은 기억의 비밀이 담긴 저장소다. 인간의 유전정보가 바로 그 기억의 저장소라 할 수 있다. 영원의 기억을 담은 유전정보에는 과거를 똑같이 반복하게 하는 ‘닫힌 부분’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상상력을 허용하는 ‘열린 부분’도 있다. 진화가 고도화할수록 ‘열린 부분’이 커지고 자유의지도 함께 자란다. 인간이란 영원의 시간을 통해 형성된 존재이자 자유의지를 발휘해 역사를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깨달음이 여기서 나온다. 영원의 상속자인 인간이 미래의 창조자가 되는 것이다.(<유레카- 엑스(x)의 존재론, 2017.04.12.)
읽기도 전에 태산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래도 도전해보련다. 분명 깨치는 게 있을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