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가나자와 미술관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전시장들이 불규칙적으로 흩어져 있는 모습을 띠고 있다. 이 미술관에는 딱히 중앙 홀이라 부를 만한 공간이 없다. 전시장들의 간격도 제각각이어서 복도들은 마치 강북의 골목길처럼 얼기설기 엮여 있다. 이런 골목길 같은 관계망을 어려운 말로 ‘리좀’이라고 부른다. 리좀rhizome은 감자나 고구마 같은 식물의 뿌리 모양을 지칭하는 말인데, 건축에서는 골목길 망처럼 여러 갈래로 엮여 네트워크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건축가 유현준의 저서 『어디서 살 것인가?』(을유문화사, 2018)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리좀'을 건축과 연관시킨 게 인상적이어서 기억한다. '리좀'은 철학용어로 통용된다. 식물학에서 지칭하는 땅 속에서 수평적으로 뻗어 있는 구근이나 덩이줄기인 '리좀'은 철학자인 들뢰즈와 가타리에 의해 중심이 없고 시작도 끝도 없는 중간, 사물의 틈, 존재의 사이에 존재하는 간주곡으로 해석되었다. 뿌리, 줄기, 잔가지, 잎 그리고 꽃과 열매로 이어지는 질서정연한 수목이나 군대처럼 위계적이고 조직적인 체계와는 판이한 고정된 체계나 구조란 게 없고 중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질서가 없고 인과관계도 아닌 다층적이고 다원적인 새로운 사유의 틀.
조가는 중학교 동기다. 예전이나 장년인 지금이나 양쪽 볼이 빵빵해 호빵맨을 닮았는데 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릴 곧잘 들었고 그 평판은 유효하다. 호인상인데다 쾌활하고 붙임성까지 남달라 대인관계도 원만하다. 학생 시절 IQ검사를 했더니 거의 멘사 수준이어서 두뇌도 명석하다. 하지만 내 기억에 아주 깊이 박혀 절대 잊혀지지 않을 잔상은, 마음에 드는 기성 시나 자기가 습작한 시를 옮겨 쓴 공책을 넌지시 건네주던 조가의, 가끔 녀석 집에 놀러가 연배가 한참 위인 그의 형 방(아지트 느낌인 게 꼭 다락방 같았음) 책장에 보무도 당당하게 진열되어 있던 플레이보이 잡지를 발견하고 놀란 토끼눈이 된 나를 재밌어하면서 거리낌없이 집어 주던 조가의 모습이었다. 감수성이 한창 예민하던 시절에 순수성과 선정성을 공유한 사이로 그와의 관계를 별쭝나게 규정한다.
고등학교를 다르게 배정받아 뿔뿔이 흩어진 뒤로 연락이 전혀 닿지 않다가 같은 대학 ROTC로 재회해서 여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전역하고 조는 굴지의 통신사에 입사했다. 지역본부 파트 팀장을 맡기 전까지는 본사 언론 홍보 담당으로 잔뼈가 굵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천성인데다 업무 특성상 자연스럽게 언론 매체와 교류가 잦아서인지 새롭고 신기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기탄이 없고 그걸 내면화하고 응용하는 데도 수완이 남달랐다. 그의 SNS 계정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10만 원대 냉장고>, <고종 때 영어교재>, <2020 올림픽을 서울에서 열자> 따위 기발한 읽을거리가 지천에 깔려 있어 조가의 박람다문博覽多聞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그가 재밌어하는 관심사를 맥락 없이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정보를 왜 게시하게 되었는지 간략하지만 설득력 있게 언급해 가상공간 속 지인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데도 탁월했다. 다채로우면서 기상천외한 정보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는 걸로 봐선 그가 건드리지 않은 분야가 별로 없을 듯싶고 여지껏 해왔던 행상머리로 봐서는 왕성한 지적 호기심은 나이 먹을수록 고질이 될 공산이 크다.
조가는 온라인 속 친구들을 살뜰히 잘 챙긴다. 관심의 다른 이름인 댓글로 표출되는 그의 따뜻한 배려는 특히 유난스럽다. 누군가가 올린 게시물을 꼼꼼하게 살핀 뒤 항상 댓글을 달아 공감을 드러내는 꾸준함은 끈끈한 유대감의 표상인 셈이다. 게다가 소모적이고 상투적인 수박 겉핥기 식 접근을 지양하고 진심이 깃들고 정성까지 충만한 댓글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어서 상대방을 흐뭇하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다. 원래 후덕한 인물이긴 한데 소통의 격조까지 더해져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만큼이나 두터워지는 관계의 친밀도를 자랑하니 샘이 아니 날 수가 없다.
나는 조가하면 엉뚱하게도 '리좀'이 떠오른다. 조가가 교류하는 관계망에 무게 중심이란 따로 없다. 각자가 무게 중심이 되어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양상이 잔뿌리와 잔뿌리가 연결해 또 다른 잔뿌리를 생성하는 그야말로 리좀이다. 관계는 다채롭고 촘촘하며 진득하면서 차지다. 그러니 한번 맺은 인연이 파탄나기란 하늘이 두 쪽 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게다. 거기에는 표를 잘 안 내면서도 항상적인 관계 유지에 부단하게 애를 쓰는 조가의 숨은 노력이 단단히 한몫 하고 있다. 조가는 리좀적 사고와 실천의 모범적 사례다.
제주도로 휴가 가던 길에 부산에 잠시 들렀었나 보다. 단톡방에서 조가의 근황을 접했을 때 몹시 아쉬웠다. 여력이 있었다면 당장이라도 조가를 찾아가 한바탕 노닥거렸을 텐데. 5년 전 부산의 경리단길이라는 부전동 카페거리에서 만났을 때 아마추어 사진가 아니랄까 봐 실력을 뽐내며 찍었던 조가의 사진을 새삼스레 들춰보면서 그 아쉬움을 달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