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고대

by 김대일

한 주 내내 가을장마랬다.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태풍(11호)이 중국으로 빠질 태풍(9호)을 빨아들여 덩치를 키워서 한반도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예보도 있다. 9월 초순까지는 일기불순을 각오해야 한다. 거센 비바람이 모두 흩어진 뒤에야 비로소 가을을 맞이할 수 있을 게다. 선풍기에 의지하지 않고 단잠을 청할 수 있는 그 가을이 머지않았다.


​귀뚜라미

나희덕


​높은 가지를 흔드는 매미 소리에 묻혀

내 울음 아직은 노래가 아니다


​차가운 바닥 위에 토하는 울음,

풀잎 없고 이슬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지하도 콘크리트벽 좁은 틈에서

숨막힐 듯, 그러나 나 여기 살아 있다

귀뚜르르 뚜르르 보내는 타전 소리가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지금은 매미떼가 하늘을 찌르는 시절

그 소리 걷히고 맑은 가을 하늘이

어린 풀숲 위에 내려와 뒤척이기도 하고

계단을 타고 이 땅밑까지 내려오는 날

발길에 눌려 우는 내 울음도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


​ 이 시는 여름과 가을을 대립시키는 시다. 여름은 억압, 가을은 자유를 상징한다고나 할까. 내 독해가 너무 억지인가. 말리지 마시라. 더 비약시켜 볼 테니.

귀뚜라미가 보내는 타전 소리, '귀뚜르르 뚜르르'가 내 귀엔 '아브라카다브라'로 들린다. 소원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아브렉 아드 하브라'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원래 뜻은 '당신의 불꽃이 세상을 밝힐 것이다'라나.

자, '누구의 마음 하나 울릴 수 있을까', '누군가의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일 수 있을까'라는 두 시구에 주목하자. 시 언어란 게 워낙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라서 두 시구가 끝맺는 모양이 '~ 있을까'란 의문형이라고 해서 곧이곧대로 읽어 버리면 해석이 자칫 꼬일 수가 있다. 암만 해도 소용이 없어 회의하고 낙담하는 식으로. 그러니 '~ 있을까'를 '~이고 싶다'나 '~ 이어야 한다'로 읽어 보자. 귀뚜라미 울음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격동시키고 가슴에 실려가는 노래가 됨으로써 세상을 밝힐 게 분명하다. 즉, '불꽃'과 '울음'은 이음동의어가 되는 셈이다. 하여 <귀뚜르르 뚜르르=아브라카타브라>라는 공식은 성립한다. 이현령비현령.

이토록 나는 가을을 고대하고 있다. ​

작가의 이전글큰딸 도로주행 시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