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이라는 글 잘 쓰는 셰프가 있다. 음식과 노포에 관해 그가 쓴 글들은 인간미 넘치고 아름답다. 몇 년 전 그가 낸 「미식가의 허기」(경향신문사, 2016)란 단행본을 읽다가 냉면 대목에서 엄마 생각이 나 몇 자 적었던 기억이 난다.
서울 출신인 엄마는 냉면을 즐기셨다. 간혹 무슨 면옥이라며 원조 흉내를 내는 가게엘 들러 평양냉면을 드시면서도 맛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씀은 없으셨다. 어릴 적 서울에서 먹던 냉면 맛에 비할 바는 아닐 테지만 이렇게라도 먹으면서 옛 추억을 곱씹으려는 심산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걸음이 불편하신 뒤로는 부러 냉면 가게로 행차하기 상그러워 동네 밀면 가게로 모시곤 한다. 자시면서 여전히 맛에 대해선 말이 없으셨다. (2017.04.19.)
그러고 2년 뒤 나는 <대전 냉면>이란 제목으로 냉면에 대해 또 썼다. 기간제를 면해 보려고 고용노동부 전담상담원을 뽑는 시험 치러 대전엘 갔다가 고교, 대학 동문인 곽을 만나 '사리원'이란 식당에서 고기 대접을 받았는데 후식으로 나온 음식이 냉면이었다.
얼굴 함 보쟀더니 시험장까지 달려온 대전 사는 친구. 결과야 팔자고 우선 허기부터 달래자며 데려간 사리원. 냉부심이 뭔지는 잘 모르지만 입때껏 냉면이랍시고 먹었던 그 어떤 것들보다 오늘 냉면은 내 입맛에 딱 맞는다.
새벽 기차 타고 올라온 데다 시험시간 120분을 꽉 채우는 근래 보기 드문 애살을 부렸음에도 뒷맛이 영 개운찮아 더 고단한 심신을 일거에 무장해제시켜 버린 그 미친 냉면 맛은, 대전에서 소문난 평양냉면 본연의 맛이건 말건 밥이라도 먹여 보내고 싶은 먼 데 사는 친구 녀석의 훈훈함이 심심한 냉면 육수와 잘 섞여 내 입맛을 홀렸을지 모를 일이다.(2019.06.29)
어제는 올 2월 허리뼈가 부러져 입원한 이래 종합병원, 재활병원을 전전하고 계신 엄마 생신이었다. 기약이 없는 재활 생활에 지쳐 버린 엄마는 부쩍 집엘 데려다 달라고 앙탈이 심해졌지만 여전히 양다리에 힘이 전혀 안 들어가는 파킨슨 환자다. 갑작스런 질 출혈로 지난 주에는 산부인과에서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받았는데 다행히 이상이 없어 한시름 놓았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외래 진료차 종합병원엘 들르면 그 병원 식당가에서 엄마랑 꼭 식사를 한다. 그리고 엄마와 먹을 메뉴 중에 하나로 냉면을 꼭 시킨다. 엄마가 냉면을 좋아하는 까닭이겠지만 가는 냉면 면발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입에 넣어 오물오물거리는 엄마를 보는 걸로 나는 나대로 엄마 상태를 가늠해 보려는 의도에서다. 예전 엄마 모습을 떠올리면서.
곽이 갑작스럽게 중국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는 소식을 전한 건 지난 해 추석 무렵이었다. 녀석 본가가 있는 해운대 미포의 한 편의점 앞에서 캔맥주를 나눠 마실 때 곽은 그날따라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에머랄드빛이 미치도록 선명한 바다와는 달리 어두워 보였다. 귀양살이 간다는 푸념은 귓등으로 흘렸지만 돌아올 기약없단 넋두리에는 숙연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 외국에 나가게 된 속사정을 속시원하게 말해 주진 않았지만 복잡할 수밖에 없는 심경은 녀석의 얼굴에서 충분히 엿볼 수 있었다. 담배를 몇 모금 속 깊이 빨아 내뱉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느자구없이 대전에서 녀석과 후루룩대던 냉면이 기억났다. 언제 다시 녀석과 그때 그 냉면을 맛볼 수 있을까. 냉면 때문에 사는 게 고달프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고 말았다.
냉면은 이제 내겐 기다림의 음식이 됐다. 엄마가 진짜 완쾌해서 손수 지팡이를 짚고 원조 흉내를 내는 무슨무슨 면옥엘 가고, 해배가 아닌 금의환향한 곽과 '사리원'에서 후식으로 나온 냉면의 심심한 육수를 맛볼 그날을 기다리는. 그러니 제발 그 기다림에 '하염없이'란 훼방꾼이 끼어들지 않길 바라고 또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