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굵게 쏟아진 뒤 장마는 무소식이고 반갑잖은 폭염과 열대야 예보만 연속이다. 겨우 7월 중순인데 말이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다면 세기말 지구 땅의 45~70%에선 에어컨 없이 사람이 살 수 없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분석을 내놨다. 현재 이 비율은 12%이지만 수십 년 내에 지구가 사실상 '에어컨 행성'이 되는 셈이라나.(경향신문 기사, 2021.07.12.)
에어컨 밑이 아니면 여름 나기가 버거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거의 우리보다 불행하다. 그때도 분명히 폭서니 열대야는 있어서 버겁기는 마찬가지였을 테지만 여름이란 계절이 위협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한여름밤의 꿈처럼 매혹적이라면 몰라도. 미증유란 말에 더는 놀랍지도 않게 우리의 자연, 지구는 나날이 쇠약해지고 회복 불능의 악화일로에 있다. 한여름의 싱그러움보다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열대성 폭우와 숨이 막힐 지경인 혹서에 공포스러워하는 우리는 과연 정상적으로 살고 있는 걸까.
불과 15살 때 환경파괴에 침묵하고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 않은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의미로 등교를 거부했던 스웨덴 소녀 툰베리를 따라한답시고 지구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라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대는 이발학원 등원을 거부하려는 건 어째 체신머리 없어 보일 뿐더러 제 무덤 제가 파는 어리석음이니 다른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해봐야 쓰겄다. 일테면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고 평가를 받는 2018년 여름의 한 일간지 기사 내용을 읽는 순간,
1999년 강원대 연구팀은 도시녹지의 기온 저감 효과를 계산해 "플라타너스와 단풍나무 한 그루의 8월 하루 동안 증산량이 시간 당 5,100kcal의 냉방능력이 있는 15평형짜리 에어컨 두 대를 13시간 이상 가동한 것과 같다"고 <한국조경학회지>에 보고했다. 국토연구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연구팀은 2016년 건국대 일대 숲지대를 대상으로 분석해 "도시림 캐노피(덮개)가 일 평균 5도 정도의 평균 복사온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같은 학회지에 실었다. (<이근영의 기상 이야기>, 한겨레신문, 2018.07.16.)
덥다고 에어컨 밑으로만 기어 들어갈 게 아니고 가로수 그늘 아래에 서서 이문세 노래를 들으면서 한낮의 열기를 식혀 시원하고 건강하게 여름도 나면서 환경보호에도 일조하는,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윈윈 전략을 고려해봄 직하다.
생각난 김에 어제 귀가길 공원 아름드리나무 밑에 들어가봤다. 만물을 짓누르는 듯한 열기를 피하자 마침내 풍성하고 싱그러운 여름 광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에어컨보다 나은 게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