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답

by 김대일

가족으로 보이는 세 남자가 우루루 몰려왔다. 삼대는 삼대인데 직계 혈통은 아닌 성싶은 게 '아버님'은 조선시대 때나 아들이 아비를 부르는 경칭이지 요즘 흔한 바가 아니고 통상 피 안 섞인 사위가 아들 노릇한답시고 아양 떠는 수작임을 모르지 않아서다. 결정적으로는 화가 난 듯한 억양이 전형적인 부산 사람임을 증명하는 늙은이와는 달리 기름기 잔뜩 먹은 서울 말투가 리드미컬하게 통통 튀는 젊은이가 닮은 구석을 찾기 힘든 외관 만큼이나 무척 이질적이었다. 하여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서너 살짜리 꼬맹이는 외손자임이 분명했다.

초로인 늙은이는 낯익은 단골이었다. 다음주 집안 경사를 맞이하야 염색까지 겸하겠다고 했다. 할아버지 머리를 깎고 염색약을 바르는 동안 대기석에서는 사위로 추정되는 애아빠와 외손자일 게 분명한 꼬맹이가 꽁냥꽁냥 장난을 치고 있었다. 한참 꼬물꼬물 놀던 꼬맹이가 제 아비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선 점방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그러자 예의 느물거리는 말투로 몇 번 타이르는가 싶던 애아빠가 짐짓 위엄스레 "○○야, 스탠답(Stand up)!" 지시를 내렸고 꼬맹이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애아빠가 머리카락과 먼지가 뒤범벅어어서 지저분한 점방 바닥에 주저앉으면 몸이 더러워지니 장난 그만 치고 얼른 대기석으로 다시 앉으라는 시니피에(기의記意)를 '일어나'란 한국말 대신 '스탠답(Stand up)'이라는 시니피앙(기표記表)으로 발현하자 꼬맹이가 이를 알아듣고 얼른 실천에 옮기는 모습은 생경했다. 바이링구얼(이중언어 사용자)로 키우기 위해 아이를 영어 조기교육에 뛰어들게 한 부모가 획득한 작은 성과물이라고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사고의 언어'가 형성되기 전 여러 언어에 일관성 없이 노출되면 아이가 오히려 '모국어'를 잃어버려 내가 '나'임을 나타내는 '사고의 언어'가 없어 표현력이 어린 시절에 멈추게 되는 역효과가 생긴다고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중요한 건 '언제' 가르치느냐보다 '어떻게' 가르치느냐라고 했는데 꼬맹이는 과연 '사고의 언어'가 완비되었을까.(<조지은 옥스퍼드대 언어학 교수 "아이를 바이링구얼로 키우고 싶다고요? '사고의 언어' 형성이 먼저">, 경향신문, 2019.05.05.)

열 평 남짓한 점방은 한국말 시니피앙이 점령했다. 그 속을 뚫고 이국적인 '스탠답(Stand up)' 시니피앙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시니피에를 기어이 완수한 꼬맹이가 장하다고만 보긴 어렵겠다. 아빠 말을 참 잘 듣는 '착한 아이'라고 깎새가 내미는 칭찬에도 '나보고 하는 소리인가, 자네?'하듯 경계어린 시선으로 쏘아볼 뿐 묵묵부답인 꼬맹이가 단지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 같지 않다는 혐의를 지울 수가 없어서였다. 제 아비가 머리를 깎는 동안 외할아버지에 앵긴 꼬맹이 사이에 나누는 대화가 제 아비처럼 썩 원활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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