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머리를 지향하는 카센터 사장님은 일주일에 네 번 학원을 다닌다. 이틀은 아침 일찍, 나머지 이틀은 저녁 늦게. 차를 다루다 보면 차에 얽힌 영어가 복잡하기 짝이 없어 골치가 아프고 자녀들한테 일일이 물어보려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라서 아예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면서 학원 입성기를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지만 영어 한 과목만 배우는 게 아니라는 주변인 뒷담화로 미루어 정규 교육과정을 이수하려는 만학도가 다니는 입시학원으로 짐작하는 깎새다.
오전 6시30분을 전후해 개금역에서 점방으로 향하는 출근길에 반대방향에서 개금역으로 잰걸음하는 카센터 사장님과 가끔 마주친다. 서두르는 품과는 다르게 뭐가 그리도 좋은지 표정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학원 가시나 봐요" 인사를 건네면 "어이, 수고해"하면서 겸연쩍어하지만 차 수리할 때보다는 확실히 얼굴이 환하다.
이른 아침 점방 여는 시간에 맞춰 민머리로 후다닥 밀고 가는 카센터 사장님한테
- 영어가 많이 느셨겠는데요?
떠봤더니
- 복습을 해야 늘낀데 시간을 못 낸다.
엄살을 부린다.
- 하기사 공부만 하는 게 아니니 참 어렵겠습니다.
- 진도 나갈라믄 전에 들었던 거 도망 안 가게 얼른 붙잡아 매야 하는데 마음만 굴뚝이고 잘 안 되네.
- 어릴 적엔 예습하고 수업 들으면 공부 잘 한다는 소릴 듣지만 나이 들어서는 예습은 언감생심, 복습하기도 벅차지요. 어차피 박사될 거 아니고 배운 거 잘근잘근 되씹는 재미로 공부할 요량이면 벅차긴 해도 복습만한 게 없는데.
깎새 말이 이치에 닿는다. 나이 들면 암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이쪽 귀로 들어간 지식이 저쪽 귀로 빠져나가기 전에 붙잡아 두는 게 급선무지 진도 빼는 건 배부른 짓이다. 그러자면 없는 시간이라도 만들어서 배웠던 걸 게워내 망각 속으로 사라질 몇 조각이나마 얼른 잡아채는 게 공부하는 요령일 수밖에 없다. 그 티끌같은 몇 조각을 우직하게 모아 태산처럼 양식良識을 쌓는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만학도만이 전유할 행복이지 싶다. 요는, 똑같은 소리 계속하지만, 복습에 충실할 자투리 시간을 확보하는 게 지상 과제다.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진 카센터 사장님 민머리를 정리하다 문득 깎새도 복습할 게 나름 있단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문구 소설집 『내 몸은 너무 오래 서있거나 걸어왔다』(문학동네, 2000)를 읽다가 체크해둔 순우리말, 상말, 속담, 관용어 따위를 정리한다는 걸 몇 주째 미루고 있었던 게다. 밑줄 그은 것들을 일일이 메모장에다 옮기면서 되새기다 보면 그나마 까먹는 시간이 늦춰지고 글 끼적거릴 때 운 좋으면 써먹기도 한다. 그걸 일 핑계 대고 미룬 지가 몇 주째다. 바빠서가 아니라 게을러서 복습을 못 하는 깎새니 민머리 카센터 사장님하고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