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매에게 바라는 것

by 김대일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는 두어 달 전에도 유모차를 끌고 점방을 찾았었다. 유모차에 탄 여자애는 구면이라는 듯 제 아비 머리 깎는 걸 얌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가 하나냐고 묻자 세 살 터울 언니는 유치원 갔다는 답이 돌아왔다. 터울이 진 자매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깎새가 아는 체를 하자 애엄마가 되물었다.

- 슬하에?

- 똑같이 딸 둘입니다.

- 큰애가 몇 살인데요?

- 스물 셋. 작은 녀석은 열 일곱.

얘기하면서 전북 익산에서 열린 대회를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오는 중이라는 막내딸과 동생 오면 같이 저녁 먹으라는 엄마 톡에 '넹' 답을 단 큰딸이 깎새는 불현듯 떠올랐다.

자매는 여섯 살 터울이다. 터울이 제법 져서인지 동생은 언니한테 무척 고분고분하다. 동생이 순순한 만큼 언니도 동생을 유순하게 대한다. 오뉴월 하루볕이 어디냐며 상대적으로 오래 산 언니랍시고 유세를 부릴 만도 하고 펜싱 운동하느라 몸집이 다부진 동생이 땅콩만한 언니를 제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 법도 한데 한집에서 식구로 뒹굴고부터 언니가 동생을 구박하거나 동생이 언니한테 대드는 꼴을 여지껏 본 적이 없다. 둘 다 타고난 천성이 수더분할 뿐더러 수틀리면 발끈하는 불뚝성 어미가 무서워서라도 불미스러운 짓을 자초하지 않는다. 머리가 굵어갈수록 두 자매 우애가 점점 깊어지고 서로를 위해주는 품이 아기자기해서 그런 아이들을 보는 낙에 아비는 그나마 살맛이 나는 게다.

두 살 터울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말 섞는 일이 별로 없어 한집에 살았어도 데면데면했다. 동생이 서울로 유학을 간 뒤로는 실낱같이 이어지던 형제애마저 흐물흐물해졌다. 형이 직장 생활로 상경했을 때 마침 제대 후 복학한 동생과 그 여자친구(나중에 둘이 맺어졌으니 계수가 되었다)는 한데 어울리며 모처럼 훈훈한 기운이 돈 적이 없지 않았지만 그마저도 동생 여자친구(계수)가 학교 동기라며 형에게 소개해 준 여자가 형을 헌신짝처럼 차 버리자 안 하느니만 못한 꼴이 되어 버린 통에 되레 더 서먹서먹해졌다. 그렇게 형제지만 남남처럼 산 나날이 쌓여 갔다. 낙향한 형이 뒤웅박 신세를 못 면하자 국내 굴지 대기업에 다니는 동생한테 손을 벌리기 일쑤였고 동생은 차라리 밑 빠진 독에 물을 붓지 사람이 할 짓이냐며 제 형수한테 단호하게 절연을 선언했다. 똑바르고 처신 바른 시동생이 오죽하면 저럴까 이해 못할 바 아니었으나 평생 자존심 하나로 버틴 마누라는 왜 자기를 비참하게 만드냐며 남편을 야속해했다. 그 일이 빌미가 됐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시댁과는 감정적으로 상당히 거리를 두는 마누라다. 맏며느리로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만 이행할 뿐.

형제 사이에 벌어진 감정의 해자는 깊고도 넓다. 특정한 계기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여기는 건 순진한 발상이다. 끝이 보이지 않은 괴리의 터널은 상존했다. 그로 인해 관계는 격절되고 불신과 오해를 낳았으며 결국 사소한 사건이 트리거로 작용해 가족이라는 허약한 뼈대를 일순 뒤흔들었을 뿐이다. 예정된 파국이었던 것이다. 앞으로 형제 사이에 의미있는 의기투합을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데면데면한 감정선을 유지한 채 서로의 영역에 간섭하지 않고 알 듯 모를 듯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게 서로가 서로를 돕는 처신이겠다.

깎새는 자매가 이대로 안 변하길 바란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진 풍파에 맞닥뜨리지 말란 법이 없지만 벅찬 줄 뻔히 알면서 혼자 부대끼다 탈진해 버리는 어리석음만은 범하지 말길 바랄 뿐이다. 비록 큰 힘이 아니라 해도 내 언니가, 내 동생이 지친 몸뚱아리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정서적 피난처가 내 동생이고 내 언니란 걸 늘 비상금처럼 간직하고 자라 주면 더 바랄 게 없는 깎새다. 그러지 못한 아비를 대속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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