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by 김대일

2021년 6월 8일자에 쓴 글은 이러했다.


​ 드라마 <킹덤> 연출자인 김성훈 감독 데뷔작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2006)은 평단에서 외면받고 흥행에서도 참패했다. 백윤식, 봉태규 주연이란 이색적인 캐스팅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김성훈을 망작 감독이란 오명을 남기는 데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당시 관람평 한 대목.

"백윤식 모셔다가 이게 대체 뭐꼬."

좌절과 시련의 터널을 헤매던 감독은 절치부심해 이후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하지만 가는 제작사마다 퇴짜를 맞는다. 망작을 연출한 감독이 쓴 시나리오라는 게 이유였다. 김은희 작가의 남편이자 영화 <라이터를 켜라>를 연출한 영화감독이면서 각본가인 장항준에게 잘 아는 제작사 간부가 시나리오 한 편을 각색해 주십사 의뢰를 했다. 너무 잘 써서 고칠 데가 없는데 굳이 왜 고치느냐고 장항준이 묻자 돌아오는 답이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감독한 김성훈이 집필해서라나. 장항준은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시나리오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총평했다.

"노래도 누가 불렀느냐, 그 곡을 누가 지었느냐, 캔버스에다 붓질 한 번 촥 X표 했는데 누구는 10억이고 누구는 장난쳐?"(팟캐스트 <시네마운틴> 내용 인용)

요행히 편견없이 작품만을 평가한 아무개 제작사 지원 아래 시나리오는 김성훈이 감독해 마침내 영화화되었다. 영화 <끝까지 간다>는 2014년 개봉해 345만 관객수를 기록하고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 부문에 초청되었다.

그릇 안 내용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릇이 예쁘니 안에 든 게 뭐든 다 예뻐 보일 뿐이다.

단 한 명의 입질조차 없었다. 그러고 보니 간과했었다. 월 1만 원 유료 구독자 모집 프로젝트를 감행했던 젊은 작가도 <손바닥문학상> 수상자란 예쁜 그릇 하나쯤 쥐고 있었다는 걸. 이럴 줄 알았다면 동네 글짓기 대회 나가 입선이라도 해놓고선 일을 벌일걸.

반성하건대, 경거망동했거나 시기상조, 아니면 그 둘 다.


젊은 작가가 SNS에서 유료 구독자를 모집한 뒤 하루 한 편씩 메일로 글을 전송하는 독립 연재 프로젝트를 벌이는 걸 보고 나도 글로 돈을 벌고 싶어서 어쭙잖게 따라했다가 단 한 명도 입질이 없어 허탈해져 쓴 글이다.

순진한 발상이었고 멍청한 짓을 했다. 글값을 할 만한 깜냥이 되는 놈인지,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조차 모르는데 어느 누가 제 주머니를 털어 선뜻 돈을 내놓겠는가. 뒤늦게 깨달았다. 깜냥은 스스로 길러 내기도 하지만 남들이 알아줌으로써 길러지기도 한다는 걸. 남들이 길러준다는 의미는 인지도, 명성의 다른 이름이겠다. 글쟁이가 필력으로 먹고 사는 건 당연하지만 남들이 알아주려면 상복賞福​도 한몫 하는 법이다. 하다못해 동사무소 주최 글쓰기 대회에서 입선이라도 해야 글쟁이 커리어로 당당히 대접받을 수가 있다.

남이 알아줄 이력이라곤 전혀 없는 나는 자력갱생을 택했다. 하루에 한 꼭지씩 글을 써서 그걸 밑천으로 다시 책을 내보겠노라 꿈을 키웠다.('다시'라는 부사를 쓴 건 일전에 이미 책을 냈다는 암시이지만 그 얘기를 더는 끌고 싶지 않다. 그 책만 떠올리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니까) 책이 읽혀지면 깜냥이 는 거고 비매품 취급을 당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질책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위 글을 쓰고 이틀 뒤인 2021년 6월 10일부터 현재까지 빠짐없이 썼으니까 800 꼭지를 훌쩍 넘겼다. 남이 쓴 시나 노랫말에다 감상 글 몇 줄 덧붙이는 걸로 퉁치는 일요일 <시 읽는 일요일> 꼭지를 빼더라도 700 꼭지를 상회한다. 한 꼭지 당 A4 용지 한 면 분량이라 치면 700페이지짜리 두께는 된다. 물론 책 두께가 내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쫓기다시피 쓰다 보니 글 대부분은 메모글에 가깝다. 하여 써놓았던 걸 고대로 옮기다간 수모를 자초하기 십상이다. 취사선택해 다듬는 작업이 선행이자 필수다.

장황하게 씨월거린 까닭은, 그 작업을 슬슬 시도해볼 요량임을 미리 알리기 위해서이다. 작업하는 목적은 내 깜냥이 늘었는지를 시험대에 올리는 것이지만 작업하는 그 자체로 무료한 일상을 견디는 또다른 재미라서 얼른 시작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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