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에'라는 뜻을 가진 독일어 문구 'Auf dem Wasser'를 알려준 이는 황형이다. 독실한 신자인 형에 의하면 마태복음에 예수님을 보면서 물 위를 걸어가는 베드로의 발이 출렁이는 호수에 막 닿는 순간을 표현하는 대목이랬다. 외국어까지 동원해가면서 형이 강조하려는 바는 아마도 어떻게 살 것인지 그 방향성을 가리키는 지남철 구실을 톡톡히 해서일 게다.
유통업에 잔뼈가 굵은 형이 손수 사업을 펼친 이래로 평탄했던 적은 별로 없었고 지금도 여전히 고전 중인 걸로 안다. 4년 전 역병 창궐이라는 직격탄은 치명적이어서 넉아웃 직전까지 몰렸지만 그는 의외로 담담했다. 운영자금이 달려 아쉬운 소리가 입에 달린 데다 바닥 기는 매출을 끌어올리려고 노심초사하면서도 호빵맨 같은 얼굴은 전보다 더 해맑았다. 초탈했거나 포기했거나. 오히려 장사치 길로 갓 들어선 깎새한테 조언을 아끼지 않길래 '남 걱정 할 때가 아닌데요' 라는 퉁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참느라 진땀깨나 뺐지만서도 그 순진무구한 여유는 도대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형은 말했다.
'사업을 한다는 건 물 위를 걷듯 기적을 바라는 건지도 몰라. 그러니 혹시 물에 빠지지나 않을까 늘 무섭고 두려웠던 게 사실이고. 마치 아래를 보다가 물에 빠졌던 베드로처럼 물에 안 빠지려고만, 앞만 보고 가려고만 했던 나날들이었다. 헌데 물 위를 걷는 게 쉽게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란 걸 부진을 거듭하는 사업에서 깨달았다 참 역설적이게도 말야. 그래서 이제는 빠져도 괜찮다, 몸에 물이 좀 젖으면 어때, 어차피 손잡아 주실 것인데, 그래서 다시 물 위를 걸을 것인데 라며 편하게 마음먹었다.’
그는 미래에 닥칠 고난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 듯싶었다.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바라기보다 바지 걷어붙이고 세찬 물길에 맞서 당당하게 헤쳐 나가겠다는 오연한 기풍이 잔잔한 감동까지 불러일으킨다. 형이 신봉하는 종교와 형 속에 내재된 강인함이 결합해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을 견결한 현실적 구도자로 거듭나게 했는지 모를 일이다.
'Auf dem Wasser'를 더 잘 알아듣게 꺼낸 일화는 좀 더러웠지만 귀에 쏙 박혔다. 형한테 무좀은 오래된 친구랬다. 찰거머리 같은 녀석을 떼어내려고 모진 짓을 다해봤지만 소나기는 피하고 보겠다는 심산인지 불리하다 싶음 슬쩍 사라졌다가 박멸이 잠잠해지면 어김없이 또 나타난다. 원망스러운 대상(사람이든 무좀이든)한테 독하게 굴면 속상한 마음이 좀 풀리는 감이 없진 않을 게다. 허나 그 쾌감은 아주 잠시뿐이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성으로 재무장한 무좀처럼 말이다. 상한 감정은 그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는데 그걸 외면만 하다가는 상처만 덧날 뿐이다. 원망한다고 바뀔 건 없는데 원망하느라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너무 어리석어서 그냥 꿀꺽 삼키기로 했단다. 한 이 년 잠잠했던 무좀이 도져 골머리를 썩이지만 자식, 반갑다! 제발 오래 묵지만 말아라. 기이한 동거를 택한 것처럼 말이다. No time to be sad. 'Auf dem Wasser'에서 비롯된 처세술인 셈이다.
안 되는 건 하는 수 없지 하고 놔버리면 수월할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형은 거의 경지에 올랐다. 그 초탈을 닮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