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보고 싶으면 소설가 한창훈 작품을 읽는다. 이야기 속 바다는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산 소설가를 닮아 비감이 묻어나면서도 날것 그대로인 생생함으로 해서 낯선 동경을 품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자고로 바다를 논하려면 한창훈에게서 바다를 배워야 한다. 그에게 바다를 사숙하려다 글을 배우고 인생까지 배우는 호사를 누릴 게다. 일석이조, 일거양득, 도랑 치고 가재 잡고,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즐거움…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여도 괜찮다.
『네가 이 별을 떠날 때』(문학동네, 2018)를 아끼다 아끼다 결국 읽었다. 사 놓고 선뜻 책을 못 든 까닭은 이 책을 읽고 나면 바다를 이야기해 주는 사람과 영영이별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였다. 책을 내면서 소설가가 밝힌 '이 소설은 나의 총화이자 결론'은 종언처럼 들렸다. 그런데도 결국 읽고 만 건 바다가 일단 절실했고 그 바다를 써내려간 소설가가 그리워서였으며 아끼다 똥 되느니 차라리 그 그리움을 연료 삼아 탈진되려는 심신을 재생하고픈 욕구가 앞서서였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마자 책장에 처박아 둔 한창훈 책을 모조리 다시 꺼내 읽기로 한다. 바다가 그리운 나머지 바닷물을 들이켜곤 갈증에 타들어가듯 한창훈은 다시 한창훈을 갈구한다. 『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문학동네, 2014)도 바다 이야기다. 다른 게 있다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가가 직접 겪은 경험담이다. 그래서 더 솔깃해진다. 전에 분명 읽었었는데 처음 보듯 새롭다. 더 가슴을 후벼 판다. 아마 이 책으로 한동안 달떠 있을 게 분명하다. 외로움조차 아름다워 보이는 경지에 오르면 나도 한창훈처럼 글을 쓸 수 있을까.
선수에 서다.
이곳에 오면 엔진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람과 파도가 부드럽게 갈라지는 소리만 난다. 나는 물방울 행성의 얇은 껍질을 미끄러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이 정도이다. 하늘을 날기 원하는 것도 아니고 돌고래처럼 수심을 제집으로 삼자는 것도 아니다. 바다와 허공의 경계인 얇은 막, 수면이면 거처로 충분하다.
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몸으로 최대한 높이 뛰어봐야 1.5미터. 죽어서는 딱 그만큼의 구덩이를 판다. 두더지처럼 굴을 파고 살자는 것이 아니다. 땅과 허공의 접점인 지면, 거기가 삶의 터전이다.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에서 시베리아까지 걸어간다 하더라도 지표면 외에는 밟을 게 없다.
이렇게 이질적인 세상이 만나고 있는 접점에서 우리는 산다. 2차원적이다. 3차원을 인식하는 2차원 생물. 그게 나다. 자유는 금기와 질서의 형태가 만들어진 상태에서 행하는 것. 더이상의 자유는 불편이고 죽음이다. 물고기는 공기에서 익사하고 새는 물속에서 질식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세계의 경계는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고매한 신부님과 오찬을 나누고 나온 길에 부랑자와 같이 쪼그려 앉아 빠는 꽁초의 고소함. 콘크리트 타설 작업 뒤에 만나는 주모의 손. 오아시스가 보이는 모래언덕. 비 그친 뒤의 햇살. 단식과 식사. 감금과 탈출. 만남과 이별. 흑과 백. 농과 담. 그렇게 두 세계 사이에서의 진자 운동.
오늘 새벽 느닷없이 발기한 물건도 내 두 다리 사이에 있다.(『내 술상 위의 자산어보』, 문학동네, 2014, 105쪽)
마침내 로테르담에 도착하다. 이제 헤어질 시간. 안녕, 콜롬보호, 안녕 시맨sea man들. 스물다섯 명 승조원들에게 피스. 두 여성작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역시 이별은 훈련이 되지 않는다. 콜롬보호가 멀어진다. 바다가 사라지고 땅이 엄습한다. 운하와 풍차와 댐의 고장. 나는 지구 반대편으로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이 항해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한다. 그들이 손가락 들어 바다의 끝이라고 가리키는 곳은 대한민국 부산항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미지의 세계이다.
히말라야산맥에서 사는 이들에게 항해자는 신비한 존재이다. 밤하늘 별 하나를 꼭 집어 저곳에 생명체가 있다면 어떤 형태일까. 뱀 모가지에 원숭이 얼굴이 하나 붙어 있을까, 다리가 달린 물고기, 책상이나 유리창, 또는 연기 같은 모습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그 별의 생물체는 은하수 구석 우리 태양계를 바라보며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는 얼마나 알 수 없는 존재일까. 식상한 삶이란 없다.(같은 책, 131쪽)
그래, 식상한 삶이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