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으로 보이는 아들을 대동한, 많이 잡숴봐야 40대 중반인 남자는 헬스클럽에서 담백질 보충제깨나 먹은 모양인지 떡대가 다부졌다. 아들 말고 자기만 깎겠다면서 의자에 앉은 남자는 살짝만 골라 달라고 주문했다. 대책없이 오지랖만 넓은 깎새는 요즘 들어 콩팔칠팔하지 않고 손님 원주문 대로 깎아 줘야 후환이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까닭에 두말없이 머리를 고르는 데만 신경을 썼다.
손님 머리는 반투블럭 스타일이었다. 속머리를 바짝 깎는 대신 윗머리는 늘어진 버들가지인 양 고대로 냅두는 스타일을 투블럭이라고 한다면 옆머리는 투블럭인데 뒷머리가 상고로 치켜올라간 모양새는 반투블럭이다. 속머리를 얼마나 짧게 깎느냐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바가 다르다. 바짝 밀고 싶으면 3밀리짜리, 좀 덜 깎기를 원한다면 6밀리짜리 덧날을 쓰는 게 통상적이다. 근데 남자는 9밀리짜리로 깎아 달랬다. 깎새는 "9밀리면 티가 별로 안 날 텐데요" 입방정 떨고 싶어 안달이 나는 걸 꾹 참았다. 손님 풍신으로 봐서 괜히 나섰다가 수습이 안되면 된통 당할까봐.
남자 머리는 애초에 대체로 단정했다. 이발한 지 길어야 한두 주쯤? 그러니 9밀리 덧날을 댄들 이발을 했는지 이발하러 갔다가 머리만 감고 왔는지 표가 잘 안 날 게 뻔했다. 당연히 작업 속도도 일사천리였고. 그냥 끝내기가 서운해 꼼수나 부려 볼까 아주 잠시 고민을 하긴 했다. 너무 빨리 손을 털면 달갑지 않은 피드백이 돌아올 게 뻔한데 그걸 맞대응하려니 성가셨다. 시간이나 축내자면 하다못해 가위 들고 헛손질이라도 해야겠지만 그냥 관뒀다. 대목 타느라 덩달아 타들어가는 속 탓에 만사가 귀찮아서. 아니나 다를까 커트보를 거두자 "이게 다한 거예요?" 묻는 품이 도발적이었다. "9밀리로 깎아 표가 잘 안나서 그렇지 이발은 다했습니다" 했더니 거울 앞에서 얼굴이 험악해졌다.
머리를 감고 난 남자가 뒷거울을 달라고 했다. '니 수작을 내 모를 줄 아나' 마음을 단단히 다잡고는 거울을 건네주는 깎새. 일순 긴장감이 감도는 점방 안. 옆머리는 그렇다 치고 보이지 않는 뒷머리 상태를 거울로 확인한 다음 조그만 흠이라도 눈에 뜨이면 그걸로 트집을 잡을 심산이었겠지만 여의치가 않았는지 내던지듯 거울을 건넸다. 그러고는 요금을 계좌로 이체한 뒤 그냥 나가 버렸다. 그런 아비가 면구스러웠는지 아들이 되레 깎새한테 "안녕히 계세요" 90도로 인사하고는 뒤따라 나갔다. 요금을 계좌로 보낼 경우 깎새가 입금을 확인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게 상례다. 아니면 손님이 요금을 송금한 내역을 직접 보여주는 것으로 거래를 일단락하곤 한다. 그런 면에서 남자는 무례하고 고약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30~40대 손님은 까탈스럽다. 왜 그런가 하고 깎새가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선 자존심이 세다. 아직 젊어서 깔롱지기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헤어, 패션에 무척 예민하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스타일에 약간이라도 어긋나 보이면 그 분을 참지 못하고 마구 쏘아댄다. 거기에 공급가액이 턱없이 쌀 경우 싼 게 비지떡이라는 고정관념이 강해 공급자를 깔보는 경향이 짙다. 싼 데를 찾은 지는 싼 놈인 줄 모르고 마구발방하는 꼴이다. 인생도처유상수라고 곳곳에 고수는 숨어 있기 마련이다. 하여 싸다고 품질이 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개뿔도 모르면서 젠체는 엄청 해댄다.
하여 깎새는 50대 이상 손님을 선호한다. 거기에 오래 묵은 단골이면 일하기 엄청 수월하다. 간혹 덜 깎거나 더 깎아서 스타일을 구겼다 한들 옹심일랑 안 먹는다. 대신 전처럼 깎지 말라고 주의를 줄 뿐이다. 그럼 깎새는 또 새겨들어서 두 번 실수 안 하게 성심성의를 다한다. 이런 걸 선순환이라고 한다면 젊은 놈들과는 시작부터 엇박자 나기 십상이다.
우리나라 인구 분포가 이미 항아리형으로 굳어졌다는 건 언론에서 익히 들어 아는 바다. 50대 비중이 가장 크고 다음이 40대(15.9%), 60대(13.5%) 순으로 40대 이하 인구 비중은 줄고 50대 이상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아이를 낳지 않는 풍조로 인해 인구절벽으로 치닫는다는 들어봐야 속에서 천불만 나는 소리나 되뇌자는 게 아니다. 결혼은 하겠지만 아이는 아니 낳고 싶다고 선언한 딸 둘을 둔 아비 입장에서 할 말이 별로 없기도 하고. 다만 장사치로서 깎새는 '나이 많은 남자 구워삶기'가 앞으로 편하게 장사할 방편의 핵심이라는 것을 숨길 수가 없겠다. 그러니 구워삶기 기술을 연마하는 데 신명을 다 바칠 따름이지 얼라들 좋아한다고 투블럭이니 모히칸, 샤기컷 따위 요란한 스타일에 목을 매는 건 하수나 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이 점잖은 장년층 상고머리나 멀끔하게 잘 깎고 볼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