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방편 처세론

by 김대일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도졌다. 왼쪽 엄지발가락은 내성발톱이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봤지만 그때뿐이다. 고질인 셈이다. 발톱 가장자리가 잔뿌리 같이 삐죽 자라 발가락 살을 깊게 침투해 들어가서 손 댈 엄두가 안 날 지경이다. 오래 걷거나 서 있으면 아리고 어떨 땐 양말에 진물이 밸 때도 있다. 깎으면 자라고 깎으면 또 자라는 지겨운 반복이 십수 년째 이어졌으면 내성발톱을 대하는 나도 내성이 생길 만도 하지만 고통 앞에 의연해지기란 쉽지 않다.

파고드는 부위에다 솜 따위를 작게 돌돌 말아 디밀어 넣는 건 임시방편이다. 그게 먹히면 통각이 둔해져 지낼 만하다. 그러다가 고통을 이내 잊곤 한다. 그럴 때 보면 사람이 참 단순하다.

가만 보면 사는 것 자체가 땜빵식이다. 하루 벌어 하루를 메우는 일상은 땜빵 그 자체다. 특히 타인과 얽힌 그물망은 목불인견이다. 생리적으로 도저히 섞일 수도 없고 섞이지도 못할 군상들한테 볼멘 얼굴을 숨기고 헤헤거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분명 육갑 떠는 짓이다. 그런데도 왜 그만두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어리석게도 잊혀질까봐 두려워서다.

그들이 필드에 나가 드라이브 샷을 멋지게 날리면서 "그때 글마 기억나?"나며 눈앞에서 당사자가 들으면 차마 얼굴을 못 들 창피스러운 과거사를 주워섬기며 지들끼리 화기애애하거나 그날 뒷풀이 삼아 한우 고기를 구워 수십 년을 묵힌 고급 술을 찔끔거리며 "글마 요새 뭐할까?"로 운을 띄운 뒤 안줏감으로 다시 잘근잘근 씹어대는 한이 있어도 잊혀지기는 싫다. 상갓집 개로 불리워진들 그들 사이에서 들먹거려만 진다면 아직 존재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한때 별로 안 맞을 인연이다 판단이 들면 일단 폐기하려고만 들었다. 버리면서까지 소중하게 구해야 할 건 자존심이었으니까. 따뜻한 물에 발가락을 푹 담근 뒤 핀셋을 들이밀어 기어이 발톱을 들어내듯 곪아 문드러진 심사에 모진 절연의 메스를 들이대 기어이 도려내고 잘라낸 뒤 새 살을 돋게 해야 직성이 풀릴 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없앤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 데다 설령 매정하게 잘라 버린들 거기서 새로 돋아나기란 결코 쉽지 않은 게 인간관계라는 걸. 그러니 파고드는 부위에다 작게 돌돌 말아 디밀어 넣는 솜처럼 벌어진 틈이 넓으면 넓은 대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어정쩡한 관계라도 잊지 않고 유지하는 게 상책이리라.

작가의 이전글나이 많은 손님 구워삶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