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스트레스

by 김대일

건물에 세를 든 점방은 세 개고 점방 뒷마당 화장실도 세 개다. 그 중 하나는 남자 소변용이고 나머지 두 개는 와식和式화장실이다. 둘 중 하나는 국수집 전용이고 나머지 하나로 깎새와 올 5월에 입점한 타코야키 모녀가 공동으로 쓴다. 타코야키 모녀가 들어오기 전 치킨 남자 주인은 자기네 치킨 브랜드를 크게 복사 떠서 화장실 문 앞에 떠억하니 붙여 놓고선 배타적 사용권을 과시했다. 국수집 전용은 남자가 퍼질러 앉아 큰 볼일 보기에는 너무 비좁아서 출근 전 집에서 한 번, 점방 오자마자 또 한 번, 아침에 두 번은 꼭 볼일을 봐야 하는 깎새로서는 치킨 남자가 전용하다시피 하는 화장실을 몰래 쓰면서 구접스럽게도 양상군자가 된 기분을 떨쳐내지 못했다.

주인(?) 모르게 무단으로 쓴다는 죄의식에 꽤나 께름칙했는지 흔적을 지워 나름 완전범죄를 꾀한다는 짓이 볼일 다 본 휴지를 화장실 안 휴지통에 안 버리고 도로 가져가 따로 버리는 수고로움이었다. 그럼에도 뒷마당에서 치킨 남자를 우연히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죄인인 양 괜히 눈치를 살피곤 했다. 임대차 계약서 상에 뒷마당 화장실 중 어떤 건 혼자 쓰고 어떤 건 같이 쓴다는 문구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라서 깎새는 좀 억울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임차인 간에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마당에 치킨 남자한테 다같이 월세 내는 입장인데 이건 좀 너무하지 않냐고 항변하자니 그건 또 볼썽사나워서 다 쓴 휴지 따로 버리는 수고만 지면 만사형통이겠거니 여기기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다가 올 5월 치킨이 빠지고 타코야키가 들어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던 것이다.

내부 수리에 한창이던 즈음 타코야키 젊은 여자 주인과 길거리 회담을 가진 적이 있었다. 깎새는 최우선 의제로 화장실 공동 사용을 들고 나왔다. 깎새 말을 경청하던 여자는 낭창낭창한 목소리로 "같이 쓰면 어때서요"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제서야 휴지 따로 버리는 수고로움에서 벗어나게 된 깎새는 정말 별일 아닌 일로 모처럼 해방감을 만끽했다. 하지만 그 해방감이란 게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불과 넉 달 만에 깎새는 예전으로 돌아갈 처지가 되어 버렸다.

엊그제 타코야키 여자가 점방에 들이닥쳐 깎새를 친견해서는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국수집 전용 화장실은 비밀번호를 눌러야 열리는 시건장치가 되어 있는 데 반해 온종일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다 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더러워진다는 푸념이었다. 두 모녀가 제 집 안방 청소하듯 매일 화장실을 쓸고 닦는데도 불구하고 똥 묻은 휴지가 휴지통 밖에까지 나와 있질 않나 그 휴지로 변기를 닦았는지 변기 주변은 똥으로 난장이며 볼일 보고 물을 제대로 안 내리는지 똥덩어리가 둥둥 떠다녀서 불쾌하기 짝이 없다며 속상해했다. 하루 절반 이상을 점방에서 죽치고 사는 깎새 입장에서 여자 넋두리는 침소봉대하는 감이 없지 없다고 여기면서도 무지하게 깔끔 떠는 두 모녀의 인내심이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여자는 화장실을 엉망으로 만든 주범으로 국수집 손님들을 꼽으면서 국수집 이모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국수집 화장실이 늘 잠겨 있어서 손님들은 당연히 옆 화장실을 이용할 테고 도떼기시장을 방불하게 들락거리니 당연히 지저분해기 마련이라는 게 국수집(더 구체적으로는 국수집 손님들)을 지목한 이유였다. 타코야키를 찾는 손님들한테는 화장실이 없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하면서 화장실 청결에 사활을 거는 노고에 반해 너무 불공정하지 않느냐면서 자기네 편을 들어달라는 듯이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머리 깎으러 오는 손님들이 큰 볼일 보는 건 아니잖아요?"하며 국수집에다 재차 혐의를 씌우려 하는 걸 맞장구치지는 못할망정 눈치없게시리 "와서 큰 거보는 손님도 적잖아요"란 대답이 돌아오자 '혹시 너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태세를 전환하는 여자였다. 말해 놓고선 몹시 후회했다. 괜히 솔직했다가 혐의의 일부를 뒤집어 쓸 판이니 말이다.

여자는 화장실 문을 열쇠로 개폐하겠다고 선언했고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자기네 쓰는 열쇠를 복사해와 깎새한테 디밀었다. 앞으로는 열쇠 가진 자들만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 넉 달 만에 배타적 사용권이 부활했다.

아침에 두 번은 꼭 볼일을 봐야 하는 깎새로서는 또 고난이 시작됐다. 만약 화장실 꼴이 또 엉망이면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게 깎새 탓으로 돌릴 테니 전처럼 다 쓴 휴지를 따로 버리든가 가끔 화장실 청소도 해주면서 문제가 일어날 소지를 미리 없애는 수밖에 없다. 화장실 가는 것까지 스트레스니 못 해먹을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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