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든 건물 뒷마당을 세 임차인이 알아서 세 영역으로 나눠 용도에 맞게 사용한다. 깎새는 마당에다 세탁기를 둬 수건을 빨거나 빤 수건을 빨래대에다 널어 말리는 데 공간을 활용한다. 국수집은 대량으로 구매한 국수나 달걀을 차곡차곡 쌓아둔 창고 용도로 쓰고, 타코야키는 깔끔떠는 모녀 기질을 반영하듯 재활용 분리 수거함만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 뿐이다. 2층 사는 건물주 아줌마가 가끔 시찰 삼아 둘러보는 것 외에 심상하기 짝이 없던 뒷마당에 야릇한 파란이 인 건 며칠 전이었다.
뒷마당 국수집 영역은 식자재 창고용으로 쓰이면서 국수집 너비만큼 빨랫줄을 양 끝단에 매달아 늘어뜨려 놓고서는 빨래 건조용으로도 활용한다. 그 빨랫줄에 며칠 전서부터 여자 속옷이 널려 있어 임차인 중 유일한 남자인 깎새를 아연케 했다. 그 빨랫줄에 하루는 여자 팬티인지 거들인지가 널리더니 다음날, 그 다음날은 피부색 브래지어가 거푸 거리낌없이 걸쳐져 있질 않나. 국수집에 여자라고는 이모밖에 없으니 속옷 주인이 이모임은 불문가지다. 깎새도 불알 두 쪽에 아직 쓸 만한 양물이 달린 엄연한 사내라서 음흉한 구석이 없지가 않으니 야릇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국수집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면 진작에 눈치채고도 남았을 테지만 목격 시점이 불과 사나흘 전부터였던 건 그것들이 그때부터 거기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겠다. 우발적인지 의도적인지 당사자한테 물어볼 수 없어 알 길이 없지만 남들 앞에 드러낼 만한 처신이 아님에도 버젓이 행하니 괴이쩍다. 혹 장사 채비 중에 실수로 물을 과하게 흘려 속옷이 다 젖는 바람에 말리려고 내놓은 것일 수 있고 출근길에 근처 단골 사우나에 들렀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입고 왔던 속옷을 빨아 점방 빨랫대에 말리지 말란 법도 없긴 하다. 허나 건물주한테 꼬박꼬박 월셋돈을 내야 하는 처지가 아무리 동병상련일지언정 내외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옆 점방 외간남자가 적어도 하루에 서너 번은 생리 현상을 해결하려고 뒷마당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 뒷문 열면 바로 보이는 빨랫줄에 자기 속옷을 걸어 놓는다는 건 결코 상식적이지 않다. 아니면 깎새를 남자로 보지 않거나.
그렇다고 대놓고 항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라고 대들 텐가. 눈앞에서 어른거리는 당신 속옷 때문에 자꾸 야리꾸리한 상상이 부풀어 오르는 걸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변태도 아니고. 하긴 그렇게 팬티도 훌러덩, 브래지어도 훌러덩 벗어 던져 빨랫줄에 널어 놓으면 도대체 뭘 입고 일했을지 궁금하긴 했다. 는실난실한 사흘이 지난 뒤 빨랫줄엔 요리용 앞치마만 걸려 있어 다행히(?) 삼일천하 해프닝으로 끝났다. 허나 국수집 이모를 우연히라도 마주칠라 치면 똑바로 쳐다보질 못하는 깎새가 됐다. 이상한 짓은 이모가 했는데 되레 오금이 저리다가 땡! 정신을 차리면 얼른 제 점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깎새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사람들이 왜 사적 영역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작년 3월 세를 든 이래로 건물 안팎으로 또렷하게 보이는 정경이 점점 많아진다. 눈이 침침하고 눈곱까지 잔뜩 끼어 두어 달 전부터 안약을 수시로 넣는데 그 효과를 보는 걸까 원래 엉큼한 놈이라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