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지 마

by 김대일

머리를 깎거나 염색을 바를 때는 가급적 이발의자에 바르게 앉는 게 좋다. 볼기짝이 의자에 착 달라붙어 있어야 무게 균형이 단단히 잡혀 이발할 때 미동이 없다. 그럼에도 기어이 다리를 꼬아야겠다면 뒷머리 한쪽이 반대쪽과 짝짝이가 되거나 염색 브러시가 새치 대신 살갗을 물들게 해도,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은 이상 깎새 시치미를 감수해야 할 게다.

드러눕듯이 허리를 주욱 빼 상체가 의자에 파묻히다시피 앉아 다리까지 꼬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은 볼썽사납다. 제 딴에는 체통을 차리고 위신을 세우는 데 유용한 몸짓일는지 모르겠으나 가벼운 빗질에도 속절없이 흔들리는 품이란 설령 그가 고관대작 사돈의 팔촌이 된다 할지라도(정말 일가붙이라면 더더욱) 꼴값이다. 머리를 단정하게 깎고 희끗희끗한 새치를 감추려고 커트점을 찾았으면 깎새가 작업하기에 용이한 자세를 취하는 게 손님으로서 에티켓이자 신상에도 이롭다.

거만하게 앉아서 다리 꼬는 게 버릇인데 어쩌란 말이냐 항변한들 핑계로밖엔 안 들린다. 제 부모나 상사, 혹은 자기보다 압도적 지위를 가진 사람 앞에서 버릇대로 버릇 없이 굴 강단이 센 막된놈이라면 깎새 오른팔과 전 재산을 내줄 용의가 기꺼이 있다. 버릇은 버릇이되 자기가 정해 놓은 기준 이하라고 남을 가늠하자마자 반사적으로 드러내는, 남을 얕잡아 보고 일삼는 고약한 버릇인 게다. 장사 이력이 붙을수록 채신머리사나운 말종을 자주 본다. 거만하게 다리 꼬고 앉아 반말을 찍찍 갈기며 깎새를 종 다루듯 하는 치들 말이다. 주문만 받고 대꾸는커녕 무관심으로 일관함으로써 손님만 아니면 상종할 가치가 없단 걸 암시하지만 절에 가도 새우젓 얻어먹을 눈치였으면 애초에 무례라는 걸 몰랐을 리 없다.

분별을 쌈 싸 드신 치들일수록 제 몸뚱아리 관리에는 유난스러워서 차라리 못된 버릇이 건강에 끼치는 악영향을 설파하는 게 각성에 더 나을 수 있겠다. 검색란에 '다리 꼬는 자세'라고 입력하면 '척추측만증, 하지정맥류, 소화불량이나 혈압상승 따위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으로 도배질이 되어 있다. 특히 해부학적 차이로 다리 꼬고 앉는 게 훨씬 쉬운 여성과는 달리 남성이 다리를 꼬면 정자 생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다. 고환이 담겨진 음낭은 음경의 아랫부분에 처져 있는 피부 주머니로 좌우로 나뉘어 있다. 피하지방이 없고 멜라닌색소가 침착돼 짙은 암흑색이며 굵고 뻣뻣한 털이 나 있다. 많은 땀샘과 가는 주름이 있어 이를 통해 열을 발산시켜 온도를 체온보다 3~5도 정도 낮게 유지함으로써 고환의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골반 앞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와 서 있을 때 밑으로 늘어져 있는 음낭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모으게 되면 음낭의 아랫부분과 양측 허벅지가 맞닿게 된다. 이때 공기가 통하지 않게 돼 사타구니가 땀으로 젖고 음낭 내부의 온도가 올라간다. 음낭 피부의 축축한 느낌과 냄새로 불편감이 생기고 고환의 기능이 떨어져서 남성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 그런데 다리까지 꼬면 볼 장 다 본 거다. 국제 남성학회지 연구라는데 15분 동안 다리를 꼬고 앉았더니 고환 온도가 최대 2.7도 올라가더란다.(<심봉석 교수의 전지적 비뇨기과시점 - 쩍벌남을 위한 비뇨기과적 변명>, 헬스경향, 2021.08.11 참고)

뒤통수만 보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욕구가 마구 이는 진상 손님한테 "남자는 모름지기 사타구니 통풍이 잘 들어야 정자 수가 늘어나고 그 질도 우수해진답디다" 슬쩍 씩둑거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고볼 일이다. 꼰 다리를 풀면 '꼴에 남자랍시고' 속으로 실컷 비웃고, 알게 뭐냐는 듯 태연하게 굴면 '고자가 따로 없군' 하고 역시 비웃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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