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형태의 권위나 억압과 그에 의한 통제가 없이 자유롭고, 다수가 소수를 희생시키지 않으며, 법과 처벌 대신 개인 내면의 도덕과 양심에 의해 실현되는 올곧은 질서가 바로 선 정의로운 세상, 우두머리가 없고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꿈꾸는 아나키즘. 아이들은 학교 다닐 필요가 없고 국가가 해 준 게 없으니 국민연금 따위는 못 낸다는 괴팍한 아나키스트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양윤옥, 은행나무, 2006)라는 소설로 아나키즘을 처음 만났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가족이야기이면서 성장소설로 보이지만 실은 아나키스트 아버지를 통해 정치권력이나 공공적 강제로 옥죄는 현실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 문제점들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간다.
- 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조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다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 단위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야.
-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 제도나 공민권 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 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아버지는 그중 한 사람이다. 알겠냐?
- 혼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없는 거야. 돈이 없어도 모두가 콘스턴트하게 가난을 즐기면 얼마든지 행복하지 않을까?
아나키즘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가 자신의 사상을 집약한 저서 『유일자와 그의 소유』(박홍규 옮김, 아카넷, 2023)를 소개하는 서평은 아나키즘을 향한 독서열에 새삼 불을 지폈다. 한겨레신문 고명섭 선임기자는 서평에서 슈티르너가 말하는 유일자(der Einzige)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자'라는 뜻으로 '나' 곧 에고라고 했다. '나'라는 유일자를 좀더 실감나게 이해하려면 그것과 대응하는 것들을 마주 세워볼 필요가 있는데 슈티르너는 신과 정신과 국가를 거론한다.
- 기독교의 신은 오랫동안 유일한 주권자로 인간 위에 군림했다. 슈티르너는 그 신의 자리에 '나'를 세운다. 마찬가지로 슈티르너의 '나'는 정신과 대립한다. 이때의 정신은 기독교 신의 철학적 표현이라 할 헤겔의 절대정신을 가리킨다. 모든 것을 아우르고 지배하는 그 정신의 손아귀에서 나를 구출하려는 투쟁의 기록이 이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정신이 기독교 신의 철학적 형태라면 국가는 그 신의 세속적 형태다. 국가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보여주는 대로 지상에 군림하는 신이다. 그 국가야말로 슈티르너의 진정한 적이다. 슈티르너는 말한다. "내 고유한 의지는 국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여기서 슈티르너의 아나키즘 사상이 분명한 형체를 드러낸다. (중략)
하지만 슈티르너가 말하는 에고이즘이 이타주의와 대립하는 것은 아니라고도 밝힌다.
- "나도 물론 인간을 사랑한다. 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에고이즘의 의식으로 그들을 사랑한다." 이타주의는 에고이즘의 한 형태이지 그것의 부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슈티르너는 사람과 사람의 연대 혹은 연합도 긍정한다. 이때의 연합은! 집단의 힘으로 '나'를 억누르지 않는 방식의 연합, 곧 유일자들의 연합이다.(<슈티르너 "국가는 나의 적이다">, 한겨레신문, 2023.09.23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나'들이 연합하는 사회야말로 아나키즘을 통해 궁극적으로 바라는 이상향이다. 무례하고 이기적인 현실 앞에서 종주먹 들이댈 저항심을 아나키즘으로 구현해낸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으리오. 아나키즘을 영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