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저 바로 윗 기수가 제일 까칠한 법이라 데면데면할 수밖에 없는데 준기형은 한 살밖에 터울이 안 진 고등학교, 대학교 선배다. 게다가 학창시절 형은 화염병 들고 종주먹 불끈 쥔 채 투쟁가를 목놓아 불러제끼던 지독한 운동권이라서 박정희를 불세출의 영도자로 세뇌 당한 당시 내게 호감을 살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어야 할 위인이었다.
준기형은 수줍음을 많이 탔다. 모든 이에게 친절했던 까닭은 숫기 없는 형 기질 상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배려가 친절함으로 비쳐지는 수줍음이었다. 이런 왜곡은 선한 왜곡이다. 형이 꿈꾸는 이상향, 거창하게 말해 정치적 이상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투쟁하는 현장에서 드러나는 용맹한 저돌성과는 달리 매사 사리 분별이 깜깜한 듯한데도 그런 형의 처신을 상대방은 다정함으로 또 왜곡하는 경향이 다분했던 걸 보면 명징하게 정의내릴 수 없는 형만이 가진 매력이 뭇사람을 매료시켰는지 모를 일이다.
준기형에게 내가 어떤 인간으로 비춰졌을지는 물어보지 않아 잘 모른다. 형을 흠모하는 만큼 과연 형은 나를 어떻게 여겼을지 만약 형을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영순위 질문이다. 하여 반백년 사는 동안 만났던 숱한 선배, 형, 누나 어떤 누구보다 더 형한테 '그럭저럭 괜찮은 녀석이야 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살아 꿈틀댄다. 아예 뇌를 들어내지 않는 한 절대 잊혀지지 않게 꽉 박혀 있는 형과 얽힌 추억 한 조각이 어쩌면 형이 나를 변변한 후배나 동생으로 여겼을 수도 있다고 추측할 만한 단서로 유일하다.
1994년은 내가 ROTC 2년차이면서 대학 4학년이었던 해다. 이듬해 졸업하자마자 군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서 학생인 듯 학생 아닌 어정쩡한 처지였던 탓에 막연한 불안감이 늘 도사리던, 나로서는 때늦은 질풍노도의 시기였던 셈이다. 실은 군 입대로 불안했단 건 둘러대기 편한 핑계고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이 나이 먹도록 찌질하고 어수룩한 천성은 어디 안 가지만 1994년 당시 2년 전에 결별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뒤돌아 선 동갑내기 여자를 잊지 못하고 미련이 남았던 게 화근이었다.
어리삥삥한 순정남은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한때 캠퍼스 커플이었던 여자와 심심찮게 마주치는 일상이 되풀이되어서 말이다. 여자가 다니는 길을 피하면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ROTC 후보생 간부였던 내가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학군단 건물은 화학과를 다니던 여자가 제 집 안방처럼 드나들던 화학관의 부속 건물이었다. 운 좋으면(?) 하루에도 여러 번 마주치는 여자와 어색한 눈인사로 일별하고 돌아설 때마다 실연의 아픔이랄지 사무치는 그리움은 차마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이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게 그렇게라도 얼굴 보는 게 한없이 좋아서, 영영 이대로 띄엄띄엄 두고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면 됐지 싶다가도 졸업하고 나면 이 모든 게 끝이라는 생각에 착잡해지면 마음은 위태롭게 휘청댔더랬다.
그해 화창한 가을, 아마 이맘때였지 싶다. 그날따라 하늘은 유난스레 높고 맑았다. '말 안 해도 네 마음 다 안다'는 듯이 준기형은 울적한 나를 사회대 앞 너럭바위로 데려갔다. 신문방송학과를 다녔던 형이 주로 드나들던 사회대 건물은 교내에서 제법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경관도 좋고 조용했으며 아늑했다. 그 구역 명물이나 다름없던 너럭바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잠시나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그날도 벌렁 드러누워 하늘만 초점없이 바라보는데 형이 꽂고 있던 이어폰 한 쪽을 불쑥 건넸다. <기억의 습작>. 예리한 비수로 곪은 상처를 째고 고름을 짜내는 듯이 아린데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해지는 느낌은 도대체 무슨 조화였을까. 창피해서 속으로만 마구 울었지만 나는 정화되었다. 수줍음 많은 형이 내게 건넨 따뜻한 위로였다.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 유독 생각 나는 준기형이다. <Old Friend> 하모니카 멜로디가 꼭 준기형을 닮았다. 형이 무척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