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만드는 통증

by 김대일

뇌과학자 송민령은 한 칼럼에서 차를 들이받은 사람과 들이받힌 사람이 느끼는 통증이 다른 까닭을 뇌의 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의 통증이란 뇌가 만들어낸 주관적 경험이라는 뜻이다. 통증을 오감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감각 기관이 수집한 빛과 소리와 맛과 냄새에 관한 정보를 뇌가 해석해 낸 결과가 오감인데 감각 경험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뇌의 상태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우울할 때면 평소 좋아하던 음식이라도 맛이 없고, 여럿이 함께 부르면 익숙한 노래도 흥겹다. 누군가는 좋아해서 뿌렸을 향수 냄새가 옆에 앉은 나는 괴롭기 짝이 없듯이 말이다. 그런 식이면 플라시보효과나 노시보효과도 결국 뇌가 장난을 쳐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격이다.


​ KBS 다큐멘터리 <마음>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시판되는 우유를 사다가 새 우유를 개발했다며 맛을 평가해달라고 했다. 피험자들이 시음하고 기다리는 동안, 피험자를 가장한 사람이 속이 안 좋다며 화장실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피험자들도 불편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심지어 피험자 중 한 명은 다음날 피부에 두드러기가 났다. 멀쩡한 우유를 마셨는데 어째서 몸에 이상 징후가 생긴 걸까? '노시보'라는 현상 때문이다. '플라시보'가 치료에 대한 신뢰 덕분에 통증이 줄어드는 현상인 반면, 노시보는 생각이 고통을 부르는 현상이다. 실제로 통증 때문에 소송을 진행하는 만성 통증 환자는 통증을 입증해야 한다는 생각에 재판이 끝날 때까지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송민령, 2017.04.04)


​ 요즘 가만 보면 없는 걱정을 만들어 사서 고생하고 앉았다. 펜싱 그만두겠다고 선언한 뒤 전학을 알아보는 막내딸이 과연 원하는 고등학교로 배정받을지, 가서는 적응을 잘 할지, 중2 이후로 손을 놓은 공부에 애착이 생길지, 새롭게 설정한 인생 진로를 향해 순항할지 시작도 하기 전에 아비가 먼저 몸이 달았다. 모친 수발 드느라 번아웃이 온 부친은 모친을 재활병원이든 요양병원이든 요양원이든 하루라도 빨리 보내 버리려 하고 모친은 집을 나가는 순간 저승길이라며 아우성이다. 자식 된 도리로 원만한 절충안을 강구하지는 못할망정 혼자서 바짝 예민해져서는 비관만 거듭한다. 사는 게 왜 이다지도 고단하냐고 제풀에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있는 통증을 참기만 해서도 안되겠지만, 있지도 않은 통증을 우기다 보면 통증이 진짜로 생길 수도 있다. 자기 꾀에 자기가 속는 것이다. 몸도 바꿔 내는 내 정신력을, 멀쩡한 자기 몸을 아프게 하는 데 쓰지는 말”자고 뇌과학자는 타이르는데 세상 나이롱 환자들한테만 해당되는 충고는 아닌 성싶다. 좀 낙관적일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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