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期한 思母曲

by 김대일

10월 들어 상가 출입이 잦다. 그제는 부산시민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했대서 일 마치고 잠시 들렀었다. 상주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똑같은 데를 다녔던 동네 친구. 중견기업 주재원으로 10년 넘게 중국에 체류 중이다. 역병으로 발목이 잡혔다가 근 4년 만인 올 7월 휴가 나오는 김에 회포나 풀자며 기별이 왔었지만 모친 건강에 이상이 생겨 급작스레 취소했던 적이 있었다. 그 모친께서 별세하셨다.

상차림을 앞에 두고 마주앉은 상주는 저간의 사정을 늘어놓았다. 고질인 허리 디스크를 다스리려 모친을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그날 저녁 병원에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왔다. 유방암 4기. 부랴부랴 큰 병원에서 수술을 했고 차도를 보이자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하지만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어 숨을 거두셨다. 지난 7월로부터 불과 4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상주 밑으로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있다. 자동차 만드는 대기업 연구소에 적을 둔 동생은 모친이 사경을 헤맬 때 미국 출장 중이었다고 한다. 친구는 주말마다 중국-부산을 오가며 경과를 지켜봤다지만 정작 임종은 보지 못했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중환자실로 급하게 옮긴 이는 어이없게도 혹시 몰라 요양병원에다 연락처를 남긴 상주의 절친이었다.

고통을 숨긴 모친이 미련하다면서 상주는 한스러워했다. 하지만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되는 핑계다. 이 세상 자식 중에 불효자 아닌 자가 없지만 두 형제야말로 불효자 중의 불효자다. 나는 상주 모친을 기억한다. 고인은 너그러웠고 이타적이셨다. 멍울이 맺힌 가슴에다 물파스를 바르면서 꾹꾹 참았던 까닭은 애오라지 자식 위하는 마음뿐이어서였을 게다. 바다 건너 두 아들한테 근심 지우면 안 된다는. 그 모친 뱃속에서 나온 형제가 모친의 그런 기질을 몰랐을까. 짐작컨대 알아도 애써 외면했을 거이다. 먹고 사는 문제라면 어디에다 갖다 붙여도 면죄부가 됐을 테니까. 지금 서 있는 자리 보전이 더 애달팠을 테니까. 딸린 처자식이 더 우선이었을 테니까. 월급쟁이 애환을 모르는 바 아니나 그렇게 형제 관심사에서 모친은 저 아래로 처진 채 안이하게 지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갓집 소주가 유독 쓰고 가슴까지 저려 오는 건 가악중에 이런 데 와서 두 줄 완장을 두르고서야 폐부를 찌르는 인생무상을 절감해서겠다. 어느덧 인생 후반을 향해 달려가는 상주 형제는 두고두고 속죄해야 한다. 실기失期한 사모곡思母曲은 회한과 비통이 되어 업보처럼 골수에 박힐 테니. 부유해지면 슬픔이 덜할까,명예로우면 잊혀질 만할까. 부질없는 짓이다.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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