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올리고 몇 시간 뒤인 오전 9시쯤 막내딸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방문할 예정이다. 막내딸 전학신청서를 들고 말이다. 필리핀 세부로 계 모임 여행을 다녀온 뒤로 회사 눈치를 보는 마누라 대신이지만 발걸음이 영 안 떨어진다. 학교에 가서 할 일이리곤 담임 만나 전학신청서를 건네는 게 다지만 혹시 그녀(담임이 여자라고 막내딸이 일러줬다)와 형식적일망정 몇 마디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난감할 게 뻔하다.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 행여 봇물 터지듯 말문이 트이면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담임한테 개인적인 불만은 없다. 다만, 학생이 펜싱을 그만두고 학교까지 바꾸는 지경에 이르게 된 데에 학교측 영향이 전혀 없었는가 하면 학부모 입장에서는 '글쎄올시다'다. 선수 학부모가 끊임없이 청원을 했지만 교육행정 상 녹록지 않다며 뭉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저간의 사정을 성토한들 애꿎은 담임 앞에서 부질없는 짓인 줄 잘 안다. 그러니 할 말이 많아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를 자처해야 하는 그 불편함이 너무 싫다.
막내딸 학교 가는 길은 부담스럽다. 그래도 가야 한다.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려고 전의를 다지는 막내딸을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