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전격적으로 담배를 끊었다. 그해 9월 애연가로 소문난 한국담배소비자협회장이 페이스북에 금연 사실을 공개했다는 기사(한겨레신문, 2017.09.01)가 가십거리로만 치부할 수 없었던 까닭은 동병상련을 느껴서였다.
대학 입학서부터 사반세기 넘게 이어온 흡연벽이 아주 부정적이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불투명한 미래와 직면해 잠시 숨을 고르고 전열을 가다듬을 짧은 여유를 건네준 건 입에 꼬나문 담배 한 개비였다. 이를테면, 자대라고 배치받은 곳에 갔더니 소대원들은 영락없이 마동석 영화에 등장하는 깍짓동들이라 군생활 제대로 꼬였다고 망연자실해하며 중대 막사 앞에서 줄담배를 피워댔었다. 부임하고 몇 달 동안 꿀 먹은 벙어리마냥 말없이 담배만 피워대는 소대장을 소대원들은 적잖이 해괴하게 봤을 테지. 암담한 미래에 전전긍긍해하는 소대장과 달리 소대원들 깐에는 저 침묵 속에 모종의 꿍꿍이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착각에 쌓여 서로가 서로를 경계해서인지 소대장 교체로 인한 혼란스러움이 덜했던 덕을 본 듯도 싶다. 구름과자가 만들어 낸 건설적인 긴장 관계라고 하면 담배를 너무 미화시킨 걸까.
이런 일도 겪었다. 부산 민락동 포구에서 포장마차를 꾸렸지만 바닥을 기는 매상 탓에 하루하루가 고역이던 10여 년 전. 부근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고교 한 해 위 선배가 자주 들렀다. 무슨 속사정인지 떵떵거리던 가세가 한순간에 풍비박산이 돼 빚잔치 벌이느라 한의원을 꾸리는 선배 얼굴은 허무와 비관으로 늘 어두웠다. 노는 가락은 어디 안 가는지 올 적마다 서너 명씩 일행을 달고 와서는 포장마차에서 제일 비싼 안주를 시켜 떡이 되도록 마셔댔다. 학생회장 출신이었다는 그는 취하기만 하면 고등학교 시절 나를 기억한다고 구라를 쳤다. 한 학년에 6~7백 명 하던 시절이었다. 말수 적고 비사교적이었던 후배를 무슨 수로 안단 말인가. 얼토당토않았다. 후배 포장마차니 다른 데보다 마음 편하고 적당히 위세를 부리면서 착잡한 심사나 달래려는 선배(술자리가 파할 때쯤이면 함께 온 일행이 술값을 계산하지 그가 먼저 생색낸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인지 일행들 표정은 하나같이 떨떠름했다)나 손님 뜸해 죽을 맛이었는데 일행까지 달고 그나마 찾아 주는 그가 절실했던 나나 처지가 어슷비슷했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랄까.
하루는 전작이 있었는지 문뱃네를 풍기며 혼자 포장마차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오늘은 외상이라며 술을 재촉했다. 어떤 사소한 빌미가 트리거로 작동해 꾹 참아왔던 울분이 폭발하는 날이 있는데 딱 그날이었다. 처음엔 좋은 말로 구슬려 돌려 보내려 했다. 하지만 기껏 술장사 나부랭이가 자기를 무시한다면서 점방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버릴 때는 찢어 발기고 싶었다. 그보다 더 사람을 처참하게 만드는 건 뒤이어 밀려드는 자괴감이었다. 이런 꼴 당하려고 밤잠 못 자고 술장사하는 건 아닌데.
민락동 포구 일대에서 보안관 역을 자임하던 활어직판장 갈매기형한테 급히 타전해 난리를 수습하는 사이 나는 선착장에 나와 광안대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차 결핍된 인간들끼리 너무 소모적이라는 허탈감에 부쩌지 못해 담배를 찾았지만 없었다. 진상을 겨우 달래 집으로 돌려 보낸 갈매기형한테 담배 한 개비를 얻었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여 내뱉고 났더니 분한 마음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갈매기형이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던졌다.
- 넌 여기서 장사할 팔자가 못 돼.
묘한 울림이었다. 꼭 그 사건 때문은 아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포장마차를 접었다. 장사치로서는 실격이라는 갈매기형 예언은 현실이 됐다.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가슴 경련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았다. 담배가 주는 찰나의 위로를 쉽사리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벽잠을 깨우는 호흡 곤란이 일상이 되어 버리고 임사체험을 방불케 하는 공포감에 몸서리치기 일쑤라 더는 버티질 못하겠더라. 마음 독하게 먹은 그길로 담배를 꺾었더니 어느덧 6년이 훌쩍 지나갔다. 오랫동안 담배가 선사해 준 위로를 생각하면 내 변심은 무정하고 발칙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금연이 살면서 행한 몇 안 되는 장한 결별이었다고 자부한다. 이젠 욕구랄 것도 없다. 그야말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 남았을 뿐인 담배다. 그건 그렇고 담배소비자협회장은 아직도 금연 중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