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를 3부 받아 본다. 경향, 한겨레는 구독한 지 10년이 넘었고 나머지 1부는 동아일보였다가 한국일보로 바뀌고 지금의 국제신문으로 갈아탄 지 2년쯤 된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성적 올리는 데 신문만 한 게 없다고 해서 아버지 이발소로 들어오던 조선일보, 스포츠서울을 읽었다. <이규태 칼럼> 말고는 별 감흥이 없었던 조선일보와는 달리 방학기 만화가 연재되던 스포츠서울은 가뜩이나 섹슈얼리티에 초집중하던 사춘기 시절의 나를 황홀경에 빠뜨렸다. 선데이서울에서나 봄 직한 야사시한 화보가 실리기라도 하면 진작에 시마이해 어둑컴컴해진 이발소에 몰래 숨어 들어가 한구석에 쟁여둔 헌 신문 다발을 뒤져 기어코 들고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알리겠다는데 신문이 여럿일 까닭이 무에 있을까 하는 순진무구하고도 단순무식한 생각에 한국에서 제일 오래됐으면서 한국인이 제일 많이 읽는다는 조선일보를 팔팔했던 30대 중반까지 끼고 살았다. 그러다 어떤 계기로(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개인적으로 꽤나 센세이셔널했었으니까 '어떤 계기'로 기억하고 있는 거겠지만) 경향신문을 사서 읽었는데 그야말로 '경종을 울리'는 경험을 한 뒤부터 미친 놈마냥 매일 신문 가판대를 뒤져 경향신문을 찾곤 했다. 이름에서 왠지 프로파간다 냄새가 나 괜히 꺼려했던 한겨레신문이었지만 허구한 날 세상사 쓸데없는 트집만 잡는 꼰대들의 말잔치 마당 같은 신문들보다야 덜 지루하겠다 싶어 갈아탔다. 경향, 한겨레 투톱 체제로의 전향인 셈인데 전향이래서 사상의 거창한 대전환를 일으킨 것 같지만 실은 단골 신문을 오른편에서 살짝 왼편으로 옮긴 것뿐이다. 그래도 생각의 평형은 이뤄야겠다 싶었는지 단골 신문유통원을 통해 동아일보를 잠시 읽다가 미련없이 한국일보로 바꿨다. 애독했던 고종석 작가가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적을 뒀었다는 데 호감을 느껴서겠고 중도 신문으로서의 매력도 한몫 했다. 하지만 갈수록 예전만 못한 필력과 짜임새에 실망한 나머지 지역 일간지인 국제신문으로 바꿨다. 부산 시민으로 지역 유력지 하나쯤 읽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였다. 이른바 중앙 종합 일간지만 읽어 눈만 높아졌다는 타박을 들을지언정 지방지 읽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부산 시민 이전에 싸지 않은 신문 대금을 지불하는 구독자 입장에서 내 돈이 아깝다고 느끼는 순간 그만 보는 게 상책이라서.
종이 신문이 발산하는 매력은 앞으로도 여전할 것이다. 모든 걸 펼쳐 놓고 취사선택하길 좋아하는 나같은 부류에게는 특히 더. 다만 신문이 보다 폭넓은 인식의 장으로써 제대로 구실하려면 나처럼 편파적이어선 요원하다. 할 수만 있다면 가판대 진열된 일간지를 몽땅 내 방으로 옮겨 놓고 싶다. 매주 목요일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다 읽은 신문 다발 두께가 지금보다 5배만 더 두꺼워지면 인식의 지평은 분명 넓어질 텐데 말이다. 문제는 결국 돈이다.
인식의 지평 운운하기가 무섭게 잘 보던 신문마저 끊게 생겼다. 지친 몸 추스리겠다고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 눌러앉은 지 한 달째인 마누라는 그간 못했던 살림꾼 코스프레를 본격적으로 즐길 참이다. 끼니를 손수 준비하는 바지런함과 밖에 나갔다 들어오기만 하면 휙휙 바뀌는 집안 풍경이 낯설면서도 싫지만은 않지만 문제는 경제권을 틀어쥔(물론 그전부터 틀어쥐고는 있었지만) 실질적인 가장의 헤게모니로 내 영역까지 침범하려 든다는 점이다. 그제는 저녁 먹는 내 옆에서 다정한 듯 단호하게 신문 3부를 1부로 줄이라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마누라 입에서 일단 발화된 엄명을 어지간해서는 주워담을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나로선 발등에 불 떨어진 격이다. 3부 중 2부는 진작에 끊겠다고 통보를 했으나 신문유통원에서 통사정해 공짜로 받아보는 중이라고 둘러댔지만 어디 돼먹잖은 소릴 지껄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그만둔 회사에서 신문대금 결재를 쭉 해 온 바 공짜신문은 절대 없으며 공짜를 빌미로 끌려다니기 십상이라는 산 경험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뒤 잔말 말고 1부만 읽으라고 아퀴를 지었다. 1부라면 도대체 뭘 읽어야 할까 밤새 햄릿처럼 고뇌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결정했다.
어제 아침 단골 신문유통원 사장한테 연락했다. 여차저차하니 1부만 봐야 하나 내 입장에서는 경향, 한겨레는 절대 못 끊겠으니 혹시라도 확인 차 실질적인 가장으로부터 연락이 오거든 1부 외에 나머지 1부는 오래된 단골 고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라고(나머지 1부 값은 당연히 드릴 테니) 꼭 대답해 달라고 부탁했다. 십 년 넘게 신문대금을 연금처럼 내고 있는 단골 구독자의 절박한 사정을 모른 척 할 수 없었던지 아니면 순간 다른 꿍꿍이가 번뜩 떠올랐는지 모르겠지만 사장은 한술 더 뜬다. 당연히 그리 하겠고 이왕 서비스할 거 다른 1부도 서비스라고 둘러대고 계속 배달하겠다(다른 1부 값은 당연히 안 받을 테니). 이로써 협상은 쉽게 이뤄졌다. 따지고 보면 서로를 위한 선의의 거짓말인 셈이다(입장 다른 사람한테는 협잡이겠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신문을 꼭 읽어야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해서라도 난 신문을 꼭 읽어야겠다. 습관은 무서운 법이니까. 내 일상의 즐거운 일부를 파탄시키지 말라! 그건 그렇고 가판대 신문을 방으로 옮기는 건 떼부자 되지 않는 한 이뤄지기 힘든 판타지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