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지긋한 손님이 불쑥,
"리커창은 시진핑이 죽였어."
하길래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별쭝난 소린가 싶어,
"중국 리커창 총리 말인가요?"
"그래. 드러난 사인은 심근경색이라지만 시진핑이 독재하려고 독살시킨 거지. 빨갱이 새끼들은 다 음흉해."
리커창 사망 소식은 금시초문이어서 사실 여부부터 확인해야겠기에 빨갱이 운운하는 것에 딱히 반박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련해 이어지는 뇌피셜은 듣기가 영 거북했다.
"법무부 장관 집앞에 흉기 두고 갔다가 잡힌 놈도 빨갱이 새끼가 분명해. 일국의 법무부장관을 어딜 감히."
"어르신, 요즘 시대에 빨갱이라는 말씀은 좀 거슥합니다. 지나친 건 맞지만 입장 바꿔 오죽했으면 그랬을까요."
"순진한 양반 같으니라구. 곳곳에 빨갱이 천지인 게 지금 한국이야.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고 떠드는 새끼들 전부가 북한 지령 받아서 그러는 거야. 또 홍범도가 빨갱이짓을 했으니 육사에서 퇴출시키는데 뭐가 잘못된 거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공산주의 빨갱이 새끼들이 북한하고 내통해 남한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적화통일시키려는 수작을 내 모를 줄 아나?"
이렇게까지 우기면 입 꾹 닫아야 한다. 전혀 딴 세상에 사는 사람한테 현실직시랍시고 대거리했다간 속은 시원할지 모르겠지만 단골 한 사람은 가뭇없이 축나니까.
한편으로 이왕 떼쟁이로 맞불을 놓을 작정이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할 필요가 있다. 그러자면 상대를 일거에 제합할 우김질 기술에 노련해야 한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범주를 설정해 우김질 난도를 높여나가는 훈련이 요구된다.
우김질도 찬찬히 관찰해 보면 자기 주장을 우기는 방법도 각인 각색인데, 대개 다음의 대여섯 범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무작정 큰소리 하나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방법입니다. 목에 핏대를 세우는 고함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반론이 묻혀버리는, 이른바 '입만 있고 귀는 없는' 우격다짐입니다.
둘째는, 그 주장에 날카로운 신경질이 가득 담겨 있어서 자칫 싸움이 될까 봐 말상대를 꺼리기 때문에 제대로의 시비是非나 쟁점에의 접근이 기피됨으로써 일견 부전승不戰勝의 외형을 띠는 경우입니다.
세째는, 최고급의 형용사, 푸짐한 양사量詞, 과장과 다변多辯으로 자기 주장의 거죽을 화려하게 치장하는 방법인데, 이것은 감히 물량 시대物量時代와 상업 광고의 아류亞流라 할 만합니다.
네째는, 누구누구가 그렇게 말했다는 둥, 무슨 책에 그렇게 씌어 있다는 둥, 자체의 조리나 논리적 귀결로써 자기 주장을 입증하려 하지 아니하고, 유명인, 특히 외국의 것에 편승, 기술 제휴(?)함으로써 '촌놈 겁주려는' 매판적 방법입니다.
다섯째는, a₁+ a₂+ a₃+… an 등으로, 자기 주장에 +가 되는 요인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는 '+α'의 방법입니다. 결국 - 요인에 대한 + 요인의 우세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방법인데, 이는 소위 헤겔의 '실재적 가능성'으로서 필연성의 일종이긴 하나 필연성 그 자체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자연 과학에 흔히 나타나는 기계적 사고의 전형입니다.
여섯째는, (자기의 주장을 편의상 '그것'이라고 한다면) 우선 '그것'과의 반대물反對物을 대비하고, 전체 속에서의 '그것'의 위치를 밝힘으로써 그것의 객관적 의의를 규정하며, 과거 · 현재 · 미래에 걸친 시계열상時係列上의 변화 및 발전의 형태를 제시하는 등의 방법인데 이것은 한 마디로 다른 것들과의 관계와 상호 연관 속에서 '그것'을 동태적으로 규정하는 방법입니다.
이들 가운데서 여섯 번째의 방법이 가장 지성적인 것임은 물론입니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1993, 52~53쪽)
우김질 중에서 가장 지성적이면서 최고의 형태로써 여섯째를 지목하면서도 선생은 이런 전제를 달았다.
그러나 저는 이 여섯 번째의 방법이 난삽한 논리와 경직된 개념으로 표현되지 않고 생활 주변의 일상적 사례와 서민적인 언어로 나타나는 소위 예술적 형상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가히 최고의 형태로 치고 싶습니다.(같은 책, 53쪽)
이왕에 우기려거든 듣는 이로 하여금 그럴 만하다고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게 모두가 수긍하는 사례를 익숙한 생활언어로 설파하는 생활밀착적 수사를 구사해야 우김질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깎새는 이해했다.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단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깨닫도록 은밀히 도와 주고 끈기있게 기다려 주는 유연함과 후덕함을 갖추는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주장과 주장의 대립이 논쟁의 형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친구가 서로 만나서 친구 따라 함께 강남 가듯 춘풍 대아春風大雅한 감화感化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군자 성인지미君子成人之美, 군자는 타인의 아름다움을 이루어 주며, 상선 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순조롭기가 흡사 물과 같다는 까닭도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지 모를 일입니다.(같은 책, 53쪽)
우김질에 맞서지 않고 물처럼 순조롭게 상대 오류를 스스로 깨우치게 기다리는 끈기, 그리하여 종국에는 대립을 서로가 이해하고 감화하는 형태로 승화시키기. 성마른 깎새로서는 감히 범접하기 힘든 경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