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을 즐기는 한 사람으로서 아지트는 필수적이다. 서울 가회동에서 30년째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하다가 2017년 2월에 문을 닫은 '소설' 같은 술집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혼자 멍 때리면서 술잔을 기울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고독이란 풀장을 맘껏 유영할 수 있게 고즈넉하면 더할 나위 없겠다. 사는 동네 부근 빈대떡집을 가끔 들르다가 발길을 끊었다. 말문을 트고부터 이모한테 주접을 떠는 나를 자꾸 발견해서다. 씩둑거리는 손님 맞장구를 치긴 하지만 그니대로 할 일이 태산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술주정하듯 눈치없이 씨월거리는 내가 너무 싫어서 더는 안 간다. 아니 못 가겠다.
하여 다시 혼자서 말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곳을 물색 중이었다. 돼지국밥집은 저렴해서 좋지만 내부가 너무 휑뎅그렁해서 마뜩잖다. 게다가 뚝배기 바닥이 드러나면 그길로 일어서야 한다. 엉덩이가 무거운 혼술꾼한테는 결격인 곳이다. 구석진 데 처박혀 홀짝대기에는 골뱅이집이 그만이긴 한데 너무 비싸다. 꼭 세트로만 안주를 시켜야 해서 부담스럽다. 고독 즐기려다 밑천 드러나기 십상이다.
몇 번을 망설이다가 드디어 지난 주에 마음 먹고 입성한 장산역 부근 일본풍 주점은 의외로 저렴했다. 점방 꾸민 것 하며 일꾼 면면이 젊은이들 취향인 게 걸렸으나 하이볼 한 잔만 시켜도 언제든 환영이라면서 서글서글하게 대하는 품이 마음에 들었다. '명란마요 오이'란 메뉴는 혼자 먹기 딱 알맞은 양으로 9,800원 가격과 더불어 아주 맞갖다. 먹을 만큼만 제값 치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안성맞춤이다.
초면에 주인장한테 부탁했다. 오래오래 장사하라고. 자주 들를 테니 제발 생존하라고. 핫플레이스도 아니면서 임대료만 비싼 장산역 주변 상권은 손님으로 메워지는 몇몇 고깃집 외에는 폐업이 잦다. 주점 입지로는 열악한 5층에 자리 잡았던 '투다리'가 두 손 들고 나간 건 임대료 인상 때문이었다. '투다리'가 떠난 이후로 마음 심란해 부쩌지를 못하겠지만 빈대떡집은 못 갈 형편일 때 돼지국밥집으로 골뱅이집으로 부평초마냥 장산역 부근을 배회했었다.
아지트가 될지 안 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저렴한데다 아기자기한 일본풍 컨셉이라는 입소문이 타면 주머니 헐빈한 젊은이들이 떼로 몰려올지 모를 일이니. 고즈넉해야 하는 혼술꾼 아지트 절대 원칙에 위배된다면 재고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건 그때 가봐서 할 일이고 당분간은 혼자서 부담없이 한 잔 즐길 공간으로 맘껏 즐길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