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위안

by 김대일

누구에게나 호시절은 있다.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며,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과잉 분비되는 한때가 호시절이라고 나라면 정의 내리겠다. 나한테 그런 호시절이란 직업상담사로 해운대구청 일자리센터에 근무하던 2019년 3월부터 그해 말까지였다.

공공근로 일자리로 들어가 3개월마다 갱신하는 비정규직이었는데 구청 청사, 제2청사라는 문화복합센터 외 전략적으로 필요한 관내 동사무소 몇몇 군데에 만든 일자리 상담 창구에 배치돼 근무하는 방식이었다. 초반 3개월은 동사무소 창구에서, 나머지 6개월은 해운대구까지 관할하는 지역 고용복지플러스센터로 파견을 나가 근무하는 행운을 누렸다. 근로계약이 만료되자 지난 9개월을 결산하려고 포트폴리오라는 걸 개인적으로 작성하면서 계산했더니 상대했던 구직자 수가 월 평균 200명에 육박했었다. 이는 다른 동료들보다 압도적이었다.

다양한 구직자를 접하면서 그들과 진로와 구직 문제를 함께 고민했던 나날은 행운이었다. 먹고사니즘의 한 방편으로, 혹은 더 큰물에서 놀기 위한 스펙쌓기용 디딤돌로만 치부하던 직업을 다양한 정신적 창조 활동을 전개해 학문, 예술 등 인간의 전체적인 발전에 기여하는 놀이로 승화시킴으로써 놀이하는 인간, 즉 호모 루덴스로도 인간은 실존한다는 가능성을 발견한 계기가 됐으니까. 굳은생각이 깨지자 각성의 효과는 컸다. 일이란 걸 하면 할수록 행복감으로 끝없이 충만되고 텐션이 한껏 오른 자긍심에 늘 달떠 있었다. 게다가 직업상담자가 지녀야 할 사회적 책무와 직업적 가치에 더더욱 천착하게 되어 마침내 헌신적인 종교적 소명의식(calling)으로까지 그 저변이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가 그립다'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다. 열정적이었던 그때가 그립다 요즘 특히. 그때처럼 자긍심에 완전히 고무된 사람처럼 신바람나게 살고 싶은데 신바람은커녕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리다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인감이 옥죈다. 그제 저녁 퇴근 전철간에서 충동적으로 문자를 보냈다. 수신인은 당시 같이 활동했던 이 선생님. 안부를 묻는다는 핑계였지만 그녀를 통해 과거 속 나를 새삼 소환시키려는 수작이었다. 그렇게라도 나를 진작시키고 싶어서.


​ 퇴근 전철 간에서 몇 자 끼적입니다. 문득 안부가 궁금해져서요.

작년 3월 개금에 커트점 개업하고 겨우겨우 연명하는 중입니다. 선생님은 어찌 지내시나요?

되돌아보면 직업상담사 시절이, 그래봐야 겨우 4년 전 일이긴 합니다만, 호시절이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이란 걸 하면서 성취감이랄지 자존감을 매일 느꼈던 시절. 그때 함께 동고동락했던 선생님들은 만약 제가 회고록이란 걸 쓴다면 아주 중요한 배역을 맡을 주역들입니다. 그중 선생님은 더 마음이 갑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생님만은 직업상담사 방면에 계속 남아 꼭 진일보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건강하시고 화목하십시오. 장산역 당도하기 직전이라 이만 맺어야겠습니다.

안부 물을 겸 가끔 문자 보내겠습니다. 뜬금없다 타박 마시고.


​ 10분쯤 지나 답글이 도착했다.


​ 반가워요 선생님~ 블로그를 통해서 선생님 근황은 대충 알고 있어요. 열심히 하시는 모습 늘 응원한답니다~

저는 지금 직상은 아니고요, ○○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 담당자로 일하고 있어요.

이렇게 문자 주시니 기쁘네요.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 푹 쉬시고 또 연락 주세요~


​ 작은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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