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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18. 2023

재수없는 새끼

   (산재 판정 받고 10개월째 가료 중인 청년 손님(2))



   - 쉬고 있다고 월급 안 나오는 건 아니겠죠?

   - 당연하죠.

   - 한 3~4백?

   - 산재 판정 받으니까 월급 말고 좀 더 붙어요. 4백은 넘어요.

   - 아픈 사람 앞에 두고 이런 말하기 좀 거슥하지만, 꽤 짭짤하네요.

   - 몸 추스르느라 발품 파는 것에 비하면 그렇지만도 않아요.

   (매달 4백만 원씩 열 달이면 4천만 원. 암만 봐도 겉은 멀쩡한 청년을 아래위로 살피면서 이 친구 '꾼' 아닌가 미심쩍어하는 깎새. 물가가 올라 돈이 돈 같지가 않다는 둥 부산 한 구청 환경미화원으로 들어가 월 6백만 원 넘게 번다는 친구만 생각하면 왜 그때 자기도 환경미화원(언제부터 그리 많이 버는 직업이 됐는지, 아니면 뒷주머니 챙기는 수완이 좋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으로 갈아타지 않았는지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둥 입만 열었다 하면 돈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나는 온통 돈 얘기뿐이었다. 겉만 봐서 모르는 게 인간이라는 동물임을 새삼스레 절감한 깎새. 순진하고 수수하게 생긴 면상과는 달리 속물의 극치를 보이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다.

   바르고 20분은 지나야 염색은 제대로 물이 든다. 샴푸하기까지 5분 남았다. 조금만 참자!)

   - 사장님, 10억 다 못 쓰고 죽으면 억울하겠죠?

   (또 돈타령일세 그려. 뚱딴지같긴.)

   - 억울할 새가 어딨어요?  자식들 양육비에 사는 집, 자동차 밑으로 매달 들어가는 관리유지비가 도대체 얼만 줄 아세요?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순 없잖우. 때가 되면 외식하고 여행도 다녀야지 철마다 옷도 사 입어야지. 돈 들어갈 데가 천지삐까리인데 억울하긴. 안 모자라면 다행이지. 아니 그보다 다달이 들어가는 게 철철 넘치는데 10억을 어느 세월에 모으겠어요. 안 그래요?  손님도 기저귀, 분유값 솔찮게 나갈 텐데 뭘.

   - 아이 없습니다. 결혼도 안 했고요.

   - 집, 자동차는?

   - 엄마집에서 살고 출퇴근은 스쿠터 타고 다니죠.

   - 취미 하나쯤은 있을 텐데.

   - 오토바이 동호회 몇 번 다니다가 관뒀습니다. 귀찮더라구요.

   (무슨 재미로 사냐.)

   - 요즘 부쩍 10억 다 못 쓰고 죽으면 어쩌나 불안해져서 미치겠어요. 어디다가 쓰면 좋을까요?

   - 그런 불안은 10억을 손에 쥐고 나서 해야 현실적이에요.

   - 10억 있어요.

   - 아니, 희망사항 말고 진짜 통장에 잔고 찍고 나서 얘기 해보자니까?

   - 10억 있다니까요. 보여 드려요? 결혼 안 하고 아이 없고 집은 엄마 집에 얹혀 살면서 월급 고대로 모았더니 10억 됐어요. 근데요, 돈은 자꾸 부는데 겁이 나서 쓰질 못하겠어요. 그러니까 자꾸 불안해져요. 쓰지도 못하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드럽게 재수없네 이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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