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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17. 2023

산재 판정 받고 10개월째 가료 중인 청년 손님(1)

   산재 판정을 받아 10개월째 가료 중이라는 청년 손님은 들를 적마다 커트만 하고 가더니 엊그제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염색까지 주문했다. 구청 공무직(무기계약직) 면접이 곧 있을 예정인데 깔끔하게 보이기 위해서라나. 몸도 성치 않으면서 뚱딴지같이 전직이라니 의아쩍었다. 자기가 하던 일과 유사한 부문 공무직을 관할 구청에서 선발하는데 전례없이 호조건이어서 지원을 했고 합격하면 곧바로 퇴사할 거라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 8명 채용에 21명이 서류 전형 합격자라고 하니 승산이 없지 않다고도 했다. 3:1 경쟁률은 여느 때 비하면 꿀이나 다름없다면서. 다니던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들어도 이해가 잘 안 갔지만 위험에 늘 노출되었던 건 분명했다. 도로변에서 주로 하는 업무였나 본데 사고가 잦아서 5년 근무하는 동안 4번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게다가 회사까지 멀어 출퇴근도 용이하지 않고.  

   "면접관을 잘 만나야 할 텐데."

   불쾌하기 짝이 없었던 구청 면접 기억이 생생한 깎새로서는 위하는 척 걱정을 해줬다.  

   "요즘은 해당 부서 직원은 이해당사자라 면접관으로 안 들어온대요. 또 블라인드 면접으로 업무 적격자 여부만 판단하게 해 짜고 치는 고스톱같은 부정은 많이 사라졌다네요."

   그러면야 다행이지만 뿌리 깊은 불신이 싹 가시기엔 미진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면접관 태도에 분개했던 때가 불과 3년 전이었다. 그 3년 사이 상전벽해라도 일어나서 지자체 계약직 선발 면접이 공정과 상식으로 훈훈하게 변했을까? 제발 그리 되었길 바란다. 혹 깎새가 사는 동네와 청년이 사는 동네가 다르니 지자체 분위기도 다르지 말란 법이 없다. 하지만 큰 아량이라도 베푸는 양 피면접자를 하대하거나 전혀 직무와 무관한 맥락없는 질문으로 피면접자를 골탕 먹이는 야젓잖은 짓을 일삼는 함량 미달인 공무원이 여전히 제 자리를 보전한 채 그들만의 리그에서 미꾸라지 물을 흐리듯 암약하고 있지 말란 법 또한 없다. 쉽사리 벗어버릴 수 없게 인이 배인 특권의식이 뷰로크라시니까.  

   9개월짜리 단기 계약직 직업상담사로 해운대구청 일자리센터에서 근무하다 2020년 12월 31일부터 계약이 종료된 뒤 이듬해 6월 거기로 다시 지원한 깎새는 서류 전형을 통과해 면접을 보게 됐다. 면접관으로 3명이 앉아 있었다. 중간 자리엔 담당 부서 계장(통상 6급)이 자리를 잡았고 직업상담사들을 관리하던 낯이 익은 팀장, 정체불명인 여자가 그 좌우에 포진되어 있었다. 

   면접 보러 두 명씩 들어갔다. 10여 분 간 이어지는 면접에서 질문은 서너 개 정도였다. 첫 질문은 공통질문으로 자기소개였다. 면접 보기 몇 달 전 ROTC 동기, 선후배들이 십시일반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해 모은 돈으로 책을 출판했다고 밝혔더니 중간 자리에 앉은 계장이 가만 듣다가 같잖다는 듯이 "크라우드 펀딩이 뭔지나 알고 하는 말씀이세요?", "크라우드 펀딩으로 책 출판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데 그리 쉽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시비조라 그렇게 해서 책을 낸 걸 냈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야 하나, 증거물이 필요하다면 면접 끝나는 대로 선물로 한 권 드리겠다 했더니 말 안 통하는 사람 취급하듯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다음 질문은 깎새처럼 구청에서 일을 해본 경력자한테 해당되는 것으로, 이전에 일하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미비했던 점을 다시 채용된다면 어떻게 보완할 것이냐는 거였다. 깎새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예상 질문 중에 하나여서 미리 준비해 간 답변을 일목요연하게 풀었다. 정체불명인 자가 그 질문을 하길래 저 사람은 직무 적합도를 판단하는갑다, 면접관 역할치고는 고급지구나 여겼더랬다. 질문다운 질문은 그게 끝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중간에 앉은 끗발 센 계장 질문은 황당했다.

   "코로나 사태로 일에 과부하가 걸렸다. 쥐꼬리만한 월급 받자고 이래야 하나 싶을 정돈데, 그래도 일할 수 있겠어?"

   요약하자면 뭐 이랬다.

   "작년 이곳에서 근무할 무렵 일복 터진 곳으로만 돌면서 일했다. 당신이 예상한 과부하 기준을 몰라 내가 작년에 경험했던 업무 강도와 견주기가 뭣해 답변이 난감하지만…"

   이라고 답변을 이어가던 도중에,

   "열심히 하겠다는 거죠?"

   라면서 말꼬리를 잘라 먹었다. 

   질문인지 겁박인지 그 의도가 분명치 않았고, 끗발 좋은 사람이 의도하는 밥값하는 사람의 가치를 알지 못하니 그 사람 입맛에 맞는 답변이 궁했으며, 그런 질문은 최종 합격자들을 도열시킨 뒤 전의를 불태우기 위한 훈시용으로 딱이련만 맥락이라곤 도통 없는 질문으로 어떻게 적합한 사람을 뽑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수라장과도 같은 일자리센터 창구를 수호하기 위해 정시 퇴근도 반납하는 멸사봉공의 태도로 임할 것이고, 하루에 구직자 3명씩 취직시키지 않으면 내 월급을 까십시오!'라고 호언했다면 끗발 좋은 사람 눈에 들었을까.

   최종적으로 떨어졌지만 차라리 낙방한 게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이후로 관할 구청 공무원이라면 색안경부터 끼고 보게 된 깎새였다.

   산재 판정을 받아 10개월째 가료 중인 청년 손님에 관해선 할 얘기가 좀 남았다. 하여 다음 글도 청년 손님에 얽힌 내용이겠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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