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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25. 2023

29년 만이야!

   한 번 점수를 내기 시작하면 정신없이 휘몰아친다는 ‘신바람 야구’로 LG야구를 추켜세우지만 유광잠바빠가 아닌 이상 신명이 날 만큼 탁월해 보이지는 않는다.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도긴개긴하는 형편인데도 인기 구단 소속이라는 같잖은 스타 의식(이런 것도 선민의식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에 젖어서는 ‘서울 깍쟁이 로터리 클럽'인 양 팀워크라곤 물에다 콩가루 타 후루룩 잡수셔서 온데간데없고, 죽 쑤어 개 주는 걸 사명으로 여기는지 선수 육성과 리빌딩이란 명목하에 헌신적인 베테랑을 헌신짝 내던지듯 야박하게 버리기 일쑤였던 프런트의 막돼먹은 엇박자 행정 따위로는 LG 한국시리즈 우승은 다시는 일어나기 힘든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감히 확신했더랬다. 

   다만 야구광이었다던 선대 구단주가 생전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만 한다면 백지수표를 풀겠다"고 공약을 내걸고, 우승 축배주로 나눠 마실 일본 고급 소주 '아와모리'를 사들여 고이 봉해 놨으며(자연 증발해 새로 공수해 술독을 채워넣었다는 후문), 우승 MVP에게 선물할 8천만 원짜리 롤렉스 시계까지 유산으로 남겼다는 일화만은 만약 LG가 일을 낸다면 그 우승에 필연성을 부여하는 주술적 전통으로써 작동할 게 분명할 테다. 모르면 몰라도 유지가 저토록 지극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트윈스 관계자들은 그런 고인한테 미안해서라도 죽은 사람 소원을 풀어줘야 했으리라.

   그런 LG가 구본무 구단주가 숙환으로 별세한 지 5년 되는 올해 한국시리즈 우승했다. MVP로 뽑힌 선수와 수훈갑 선수가 예능프로에 나와 우승 후일담을 풀어내면서 기쁨을 만끽했다. 저세상에서 우승을 지켜본 구단주는 마침내 우승의 한을 풀었다며 쾌재를 불렀을까. 선대 구단주의 염원을 풀어준 LG트윈스는 다음 우승을 위해 또 어떤 전통을 새롭게 내걸까.

   LG트윈스 우승은 21세기 들어 한국시리즈를 거머쥐지 못한 팀은 엘롯기 중 롯데만 남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LG처럼 낭만적인 전통이 있기는커녕 팀이면 팀, 프런트면 프런트 예외없이 무미건조하고 무사안일하며 오합지졸로 비춰지는 조직력으로는 부산 구단이 우승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보다 어려울지니. 이루지 못할 꿈을 매년 어김없이 꾸고 앉았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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