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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27. 2023

슈퍼마켓 해프닝

   점방 가는 길에 가끔 들르는 슈퍼마켓은 24시간 내내 매장이 돌아간다. 새벽 출근길에 자질구레한 것들을 사는 데 요긴하다.

   주전부리 사려고 들렀던 며칠 전이었다. 점심 끼니를 담은 홈플러스 장바구니를 손에 들고서. 카운터는 낯이 익은 젊은 사내가 자리잡고 있었다. 들를 적마다 카운터를 지키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으니 야간을 지나 새벽 근무를 전담하는 알바이거나 경영수업을 몸소 체험 중인 주인네 아들내미, 그도 아니면 아예 그 슈퍼 주인일는지 모른다.  

   아무튼 카운터에서 ㄱ자로 꺾이는 바람에 손님 행각이 묘연해지는 사각지대인 유제품 코너로 들어서서 우유를 고르려는데 뒤가 영 따가웠다. 뭔가 싶어 돌아봤더니 느닷없는 반응에 화들짝 놀란 그 직원이 후다닥 카운터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꼭 미행을 당한 듯한 이 더러운 기분은 뭐지.

   문득 손에 들린 홈플러스 장바구니가 눈에 들어왔다. 인적 뜸한 새벽 시간만 노려 슈퍼 물건을 슬쩍하는 절도범으로 오인했을까. 가끔씩 들러 아주 낯설지는 않았을 텐데 필요한 것만 딱 사서 계산하진 않고 매장 코너를 빙빙 돌면서 밍기적거리는 일이 다반사라 경계하는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던 걸까. 심증은 가는데 물증이 없다가 오늘 촉이 딱 와 몰래 뒤를 밟았을지 모른다. 의심스러운 움직임이 보일라치면 딱 붙들어 현행범으로 넘기려던 속셈이었을까. 결정 장애가 거의 병적이라는 걸 슈퍼 직원에게까지 굳이 드러낼 까닭이 없다. 그게 부메랑이 되어 이리 돌아온 거라면 내 불찰인가. 그 짧은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무엇 때문에 의심을 샀을까. 마스크를 쓴 인상이 영락없는 소도둑놈이어서일까 뭐라도 훔쳐 갈 행색으로 다분히 보여서일까. 남한테 돈 빌려서 못 갚은 적은 있어도 남의 것 몰래 훔쳐서 제 잇속만 챙긴 적은 결단코 없다. 착하게 살았다고 자부하진 못하지만 좀스러운 좀도둑으로 살지도 않았다. 빈정이 상해 더는 슈퍼에 머물 수가 없었다. 아니 다신 그 슈퍼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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