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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28. 2023

아르바이트를 그만둔 까닭

   규모가 꽤 큰 학원이 운영한다는 학생 자습실 사감 비스무리한 일을 하던 큰딸은 아르바이트를 관두겠다고 통보했다. 새 사람을 구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겠지만 정해 놓은 기한까지로 연장은 곤란하다고 명토를 박았단다. 통보하기 며칠 전 왜 그만두는지 속사정을 털어 놓았다. 직속상관이나 다름없는 실장이라는 자는 그 학원 정규직인가 본데 큰딸한테 은근히 갑질을 해댔나 보더라. 알바인데도 정규직 영역을 넘나드는 업무를 가중시킨다든지 실장 내키는 대로 근무시간을 자주 변경시키는 바람에 부담과 혼란을 야기했던 모양이다.

내년 복학 전까지 제 용돈을 제 손으로 벌겠다고 나선 알바인데 뭐 그리 근사한 체험이라고 비정규직 서러움까지 당할 까닭이 없어서 그만두겠다는 큰딸을 옹호했다. 말 나온 김에 아비는 수다한 직업을 전전했던 선체험자로서 대한민국이라는 데가 직업을 가지려는 자에게 얼마나 혹독한 나라인지를 경계시키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악하기 짝이 없는 고용환경에서 내 자식만은 상대적으로 덜 고되고 덜 서러운 편으로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숨길 수가 없어 직업의 귀천을 충고랍시고 주워섬겼다. 

   이를테면 제아무리 호조건일지언정 계약직, 촉탁직은 사절하라. 주변 여건이 불안정해지면 제일 먼저 잘리는 파리 목숨이니까. 직업군으로는 보험설계사, 자동차딜러 따위 영업직은 맡지 말라. 억대 연봉으로 유혹해도 명세서에 찍힌 액수의 절반은 고객관리, 품위유지로 이미 나갔거나 앞으로 나갈 비용이니 빛 좋은 개살구 신세다. 아무리 궁해도 아비 말을 명심하라. 이 빌어먹을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안온한 일상을 영위하려면 정규직밖에 답이 없다. 그것이 비참한 현실일지라도 말이다.

   구청 일자리센터 직업상담사로 근무했던 9개월 중 3개월은 관내 한 동사무소 일자리상담 창구를 맡았었다. 거기서 보고 겪었던 걸 간단하게 소묘했었다.

   

   1.

   "왜 이렇게 일찍 다니세요?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정해진 시간보다 이른 출근이 의아했는지 기간제 직업상담사한테 한 여자 공무원이 당돌하게 물었다.

   - 집에서 동사무소까지 한 시간 반이나 걸리다 보니 버스 한 대 놓치면 제 시간에 못 올 것 같은데다 만원버스 타는 게 싫어서 좀 일찍 나오는 편입니다만.

   - 새벽잠 없어진 지 좀 됐습니다. 빈둥거리다 허둥대느니 널널하게 채비하는 게 습관이 됐는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 좀 일찍 나와서 그날 할 일 미리 뒤적거려 나쁠 건 없잖아요?

   - 자발적인 정성까지 타산적으로 따져야 직성이 풀립니까? 당신은 주민의 공복公僕으로 동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거 아닙니까? 구태여 복지부동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잖아요? 허울뿐일지언정 격식을 차린 발언을 해주면 어디가 덥납니까? 

   무례한데다 바람직스럽지도 않은 질문은 그 여자가 정규직 공무원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야살스러웠다. 질문에 답하지 않고 말없이 웃고 넘겼지만 분통이 터진 게 사실이었다. 9개월짜리 기간제가 구청장인들 겁날까. 무엇이 그리도 두려워서 싸가지없는 공무원 눈치나 살폈을까 비굴하게도. 삭히느니 면전에다 대고 따따부따했으면 속이나마 씨언했을 텐데. 

   2.

   근무하던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인지 기간제인지 구분하는 방법.

   9 to 6 얄짤없으면 기간제, 출근은 엇비슷한데 오후 6시 이후에도 밍기적거리면 공무원. 야근수당도 세금인데 말이다. 

   근무하던 동사무소에서 업무시간 중임에도 한편에서 누가 요란하게 웃으면 맞장구치며 따라들 웃는 이들은 다 공무원, 바쁜 척 그 광경을 모르는 체하면 기간제.

   업무시간 중에도 담소를 즐기러 동사무소 안을 종횡무진하면 공무원, 화장실 용무 외 점심때 말곤 엔간해선 퇴근 때까지 자리 고수하면 기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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