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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01. 2023

핑계

   권태로움이 지나치면 만사가 성가시다. 이 곤란한 감정은 모든 게 무가치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매우 허전하고 쓸쓸한 허무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허무는 또 무엇에서 기인하는가.

   이런 상태에 매몰되면 백약이 무효다. 권태로움이 알아서 얼른 사라져 주길 바라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상책이겠다. 실마리만 잡는다면야 글 나부랭이 몇 줄로 오늘도 겨우 넘어가겠으나 그 실마리가 안 보이니 난처하다. 지금 이렇게 끼적대는 게 실마리 아니냐면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오늘은 암만 해도 글을 올리지 못하겠으니 뻘짓으로 땜질하겠다는 핑계를 둘러대려는 의도인 바, 핑계가 글줄깨나 채우면 그 자체가 실마리이겠고 아니면 오늘 할 일을 방기하는 구실밖에 못 되겠다. 무엇이건 간에 권태로움이 지나치니 머릿속까지 하얘진다.


김별아

● 사랑은 중독이다. 검푸르게 피어나는 분노와 내장을 태우고 녹이는 증오에 추억이 독살당한다. 사랑한 만큼, 꼭 그만큼 독성은 맹렬하고 강해진다.

● 세월이 흐른다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시간이 스친 냉정한 흔적은 백발과 주름살로 남았지만, 포개어 쌓인 경험과 연륜이야말로 팽팽한 피부와 흑발로 바꿀 수 없는 재산이었다.

고종석

● 어떤 사랑은 마디게 닳고 어떤 사랑은 헤프게 닳는다. 아무튼 모든 사랑은 궁극적으로 닳는다.

● 잦으면서 상투가 되지 않는 것은 세상에 없다. 감탄도 마찬가지다. 언어가 팽창할수록 느낌은 무뎌진다. 거듭된 감탄으로 가용어휘를 바닥내면, 정작 감탄할 대상을 만났을 때 입 다물 운명에 처하게 된다.

최일남

● 길을 나서면 슬며시 떠오르는 탈각의 느낌이 무엇보다 좋다. 집에 벗어 두고 온 허물을 객관화시켜 멀리 바라보는 계기로 다시 없다. 돌아가면 또다시 걸칠 허물일지언정 그렇다.

● 추억도 적금을 붓듯이 여투는 것인가. 미리 빌려 쓰는 재미에 겨워 행복을 꿈꾸는 시간인가.

​신영복

●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장송落落長松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 더 좋은 잔디를 찾다가 결국 어디에도 앉지 못하고마는 역마驛馬의 유랑流浪도 그것을 미덕이라 할 수 없지만 나는 아직은 달팽이의 보수保守와 칩거蟄居를 선택하는 나이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역마살에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며 바다로 나와 버린 물은 꼴짜기의 시절을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옷자락을 적셔 유리창을 닦고 마음 속에 새로운 것을 위한 자리를 비워두는 준비가 곧 자기를 키워나가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고명섭

● 우리 인간은 단순히 현재만을 사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미리 달려가는 존재이며 동시에 과거를 기억하고 마음에 간직하는 존재다. 인간은 '다가올 미래'와 '지나간 과거'를 함께 품음으로써 현재를 산다. 그러므로 미래는 다가올 시간으로서 현재 안에 있고, 과거는 간직된 시간으로서 마찬가지로 현재 안에 있다. 현재 안에 미래와 과거가, 다가올 것과 지나간 것이 함께 속해 있다.


​양창순

● 나는 고독에 관한 한,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다음과 같은 표현을 좋아한다.

“무슨 일을 시작하든 우선 고독이란 강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강을 건너지 않고는 제아무리 거창한 말을 입에 담는다 해도 다 어린애 장난이다.”

물론 창작을 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지만, 그의 결연함이 묘하게 위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적어도 고독에 관해서는.


​천명관 

● 꿈이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야.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 꿈이 너무 간절하지만 막상 그것을 이루고 나면 별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되거든. 그러니까 꿈을 이루지 못하는 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 정말 창피한 건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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