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락 포구에서의 2년
(1) 의사 되길 포기한 청년
민락 선착장과 어민활어직판장 사이에 거대한 공터가 있었다. 지금은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선 그 공터 주변으로 포장마차들이 촘촘히 붙어 동서로 촌을 형성해 성황을 이뤘던 때가 불과 사오 년 전까지였다. 2014년부터 2년 가량 그 포장마차촌 일원이 되어 불야성을 쌓던 그 시절이 나는 썩 그립지가 않다. 낮밤이 바뀌는 바람에 생체리듬은 교란됐고 하나라도 더 팔아 보겠다는 과도한 집착이 연일 과음을 불러 몸이 남아나지 않았을 뿐더러 마른 행주 짜내듯 삭신을 쥐어짰건만 남는 것 하나 없이 헛장사로 일관했던 흑역사가 뭐 좋아서 기억하고 싶으까. 몸에 안 맞는 옷을 걸친 양 팔자에도 없는 장사꾼 행세를 했던 2년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로 규정지어질지 아직 덜 살아봐서 당장 말 못하겠다. 다만 번개탄에 불 붙여 장어니 가리비를 굽는 와중에도 귀 쫑긋거리며 엿들었던 한 잔 걸쳐야 비로소 말문이 트이는 숱한 사연들만은 내가 혹시 글로 먹고 살 기적같은 사태가 벌어질 걸 대비해 잘 갈무리해 둘 필요성을 느낀다.
공치는 날이 많았던지라 심심풀이로 끼적댄 걸 밴드니 블로그에 중구난방으로 올렸었는데 이참에 전부 모아 다시 고쳐 볼까 한다. 이 글은 그 중 한 꼭지다.
는개비 뿌리던 늦은 밤, 두 청년은 장어를 직접 구워 가며 소주를 마셔 댔다. 귓전을 울리는 대화는 둘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닌 건 확실한데 각자 친했던 친구 이름 몇몇을 들먹이다 보니 2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야구선수 출신인 친구가 뒤늦게 알아챘고 그게 어처구니 없어 하는 맞은편 청년이 열심히 타박하는 내용이었다.
대충 호구조사를 마치고 나서 주거니받거니 잔 터는 속도가 빨라졌다. 소주 다섯 병을 동냈는데도 취한 기색 하나 없이 대화는 이어지는데 자못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한참 지나 야구선수 출신이라는 청년이 볼일 보러 잠깐 나간 사이 맞은편 청년이 미리 계산하겠다며 다가왔다. 잔돈 건네다 말고 그 놈의 빌어먹을 오지랖이 동했다.
"친구는 지금도 야구 계속하나요? 운동선수라서 그런지 어깨가 떠억허니 벌어졌드만."
"그만둔 지 오래됐어요. 지금은 공부해요."
호기심이 발동하다.
"올해 나이가?"
"스물여덟입니다."
"공부라 하면?"
"법 공부해요 저 친구. D대학교."
"법학대학원 다니시는구나. 법 공부하느라 고생깨나 하겠구려. 그럼 우리 친구는?"
"의대 다녔어요 Y대학교."
"엉?"
"실습 나갔다가 못 볼 꼴 많이 봐 휴학해버렸어요. 그만 다닐라구요."
"집이?"
"부산입니다. 그러니 여기서 편하게 술 마시죠."
"부모님이 적잖이 실망하셨겠수. 혹시 그러라고 하시던가요?"
"어머니만 계신데 진지하게 말씀드려야죠."
"옛날 같진 않겠지만 의사가 그래도 아직은 선망하는 직업인데… 염두에 둔 건 있수?"
"요리할라구요. 그래서 그 쪽 일자리 알아보는 중입니다."
"상심이 크실 텐데 어머님이."
"누나가 의사라서 괜찮을 겁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초면에 이런 말 실례이긴 한데, 우여곡절이 많은 게 인생입디다. 그러니 못 살겠단 소릴 입에 달고 살지. 직업이라는 게 어쩌면 험난한 세파를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해줄 수도 있어요.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순 없지만 내 생각에 좀 더 신중하면 어떨까 싶은데."
또 다시 침묵.
"나야 의대 생리를 알 리 없으니 병원문 박차고 나올 그 못 볼 꼴이 뭔지 당최 모르겠지만서도 스물여덟이면 적은 나이도 아닌데 모험이라는 게…"
"잘 먹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볼일 마친 동행이 들어오자 계산 끝났다며 데리고 나갔다. 그날의 소회를 나는 이렇게 적었다.
[무람없는 입방정이기로서니 속은 후련하더라. 불현듯 벼랑 끝에 걸린 외줄 위에서 곡예를 자처하는 아슬아슬한 불안을 엿보았다면 내가 너무 나간 걸까? 내 스물여덟 살 적에도 세상 무서울 거 없이 뭐든 다 할 것 같고 뭐든 다 될 것 같았다. 허나 청춘은 이울기 마련이고 무정한 시간은 가뭇없고 탕진해 버린 시간마냥 기백도 그 빛을 잃어갔다. 섣부른 전복보다는 너울대는 인생의 파도에 몸을 맡기는 교활함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런데 개똥철학마냥 주접을 떨면서도 왜 자꾸 섬뜩한 기분이 드는 걸까. 상식이라는 명분의 잣대를 마구 들이대 주체적인 삶의 태도에 딴지를 거는 엉터리 보수주의자로 혹시 전락한 건 아닌지 나는 두렵다.]
두 청년이 왔다 간 몇 달 뒤, 의사를 포기한 청년이 뷔페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이자 애인이라며 여자와 함께 찾아와 예약을 걸었다. 뷔페 동료들과 회식을 가질 텐데 내 가게로 정했다면서. 대신 자기네들 근무 끝난 이후로 잡아야겠는데 괜찮냐고 양해를 구했다. 새벽 1시. 다른 점방 파장할 시각에 회식을 시작하면 밤을 꼴딱 새야 할 판이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매상 올릴 기회이기도 하려니와 청년의 더없이 밝고 행복한 표정에 덩달아 동해서였다. 내 생각이 틀려서 더 기분 좋았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