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락포구에서의 2년

(2) 함께 맞는 비

by 김대일

"김사장, IQ가 뭔지는 알 테고 EQ는 뭘 거 같아?"

고교 선배면서 대학 선배들이기도 한 일행 네 명이 저녁 느지막하게 자리를 잡고 잔 기울이는데 유난히 체구가 왜소한 한 선배가 불쑥 물었다. 허를 찔린 내가,

"E가 Emotional 약자 같으니 감성지수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라고 답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나머지 일행이 이구동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 선배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그럼 이리 물어보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우산을 쓰고 걷는데 저 앞에서 우산도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친구를 보면 김사장은 어떻게 할 텐가?"

"우산을 같이 쓰겠습니다."

한 목소리로 그게 의리지 하며 나머지 일행은 잔을 높이 치켜든다.

"대개는 우산을 함께 쓰려고 하지. 그게 인지상정이고. 하지만 진심으로 그를 배려한다면 우리는 달리 접근해야 해. 비 맞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상념에 젖어 걸어가는 그의 한두 걸음 뒤에서 우산을 접고 말없이 따라 걸어가는 건 어떨까. 그의 고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지. 내가 말하는 EQ는 Empathy의 E네. 공감, 공감지수인 셈이지."

당시에 신박했던 '함께 맞는 비'가 그리 낯설지 않았던 건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 기시감의 정체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사람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을 뿐이며, 남을 돕는다는 것은 그 '스스로 도우는 일'을 도울 수 있음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르치는 것은 다만 희망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아라공의 시구를 좋아합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햇빛출판사, 156~157쪽)

선배가 신영복 선생을 표절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입장의 동일함'을 덕분에 상기한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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