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는 일요일(5)

by 김대일

행복

천상병


나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나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안 넉넉해도 땟거리 걱정할 정도로 궁하진 않고, 대학을 다녔으니 나 역시 배움의 부족이 없으며, 내 이름자 박은 졸저를 내서 하찮은 명예욕이나마 살짝 즐긴 적도 있었다. 잔소리 심한 것만 빼면 더할 나위 없는 ​내 마누라를 두고 허튼 짓 한 바 없고, 아직은 품 안의 자식들이되 순순한 성질로 미루어 집안 거덜낼 짓은 안 할 성싶으니 무자식 상팔자가 남 일이다. 때 되면 재산세 고지서가 꼬박꼬박 날아오는 집은 네 식구 사는 데 아무 불편이 없다. 술이라면 쌍심지 켜는 마누라가 부러 사다 주진 않지만 동네 선술집에서 한 잔 꺾는다고 타박 또한 하지 않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하늘로 소풍 떠난 시인이 부럽지 않을 만큼 나도 가장 행복한 사나이다. 우주에서 제일 강력한 빽이 없어 꿀린다 뿐이지. 그러니 내가 졌다.

작가의 이전글민락포구에서의 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