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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1. 2023

기다림

   10년 전쯤 부산 민락 포구에서 팔자에도 없는 술장사를 2년 간 했다. 남미에서 오래 살다 귀국한 당숙 내외가 한국 물정 익히는 셈 치고 연, 꾸린 지 1년도 채 안 된 조개구이 포장마차를 인수해서 말이다. 맨 땅에 헤딩하듯 덤벼든 요식업에 단골이 변변할 리 만무했다. 인수하고 몇 달은 벌기보다 허탕 친 날이 잦았다. 차 한 대 겨우 지나다닐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줄지어 서 있던 다른 포장마차들은 해만 기울었다 하면 문전성시에 불야성인데 이내 점방은 밤이 새도록 휑한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으니 영혼 가출은 시간 문제였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게 미치도록 피 말리는 짓인 줄 그때 절감했다.

   2년 전 커트점 개업하고 한동안은 머리를 깎기보다 손님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하루에 대여섯 명만 받아도 오감타 여겼다. 그래도 참을 만했다. 10년 전 미리 맞은 예방주사가 효력을 발휘한 셈. 조급해하지도 섣부르게 실망하지도 말자며 온종일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10년 전엔 더했으니 이건 아주 껌이다 가볍게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참 견디기 어려웠던 건 역시 기다림이었다. 분명 이골이 났을 기다림이 해소되지 않고 쌓이다 보면 당장은 표가 안 나지만 장차 사람을 넉다운시켜 버리는 후환이 두려웠던 게다. 퇴근길 전철 간에서 완전히 퍼져 널부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던 까닭은 일이 고됐다기보다 기다림에 끌탕이었던 육신이 제풀에 지쳐버린 가련한 방전 때문이었으리라.

   요새는 고정 단골이 제법 불어 기다리는 사이가 전보다 훨씬 촘촘해졌다. 몇 시간이고 밀려드는 손님 받느라 쉴 틈이 없을 때도 적잖다. 격세지감이 따로없다. 교만 방자할 만도 한데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할 성싶으면 10년 전 휑했던 포장마차를 떠올린다 기특하게도. 하여 누가 장사 초심이 뭐냐고 물으면 살을 에는 한겨울 바닷바람을 석유난로로 달래며 언제 올지 모를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미련함이라고 대답하겠다. 

   자, 시에 등장하는 '사람'을 '손님'으로 바꿔 읽어 보자. 손님 기다리는 장사치 팔자 딱 그짝 아니더냐고. 이런 시는 사람 속을 훤히 꿰뚫는 통찰력을 장착했다.


​기다림

        성백원 


​매일 만나는 사이보다

가끔씩 만나는 사람이 좋다

기다린다는 것이

때로 가슴을 무너트리는 절망이지만

돌아올 사람이라면

잠깐씩 사라지는 일도 아름다우리라

너무 자주 만남으로

생겨난 상처들이

시간의 불 속에 사라질 때까지

헤어져 보는 것도

다시 탄생될 그리움을 위한 것

아직 채 벌어지지 않은

석류알처럼 풋풋한 사랑이

기다림 속에서 커가고

보고 싶을 때 못 보는

슴벅슴벅한 가슴일지라도

다시 돌아올 사랑이 있음으로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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