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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Dec 12. 2023

인간은 혼자 졸고 혼자 죽는다

   살면서 떨어지는 건 기력만이 아니다. 머리카락 숭숭 빠지듯 떨어져 나간 인연이 수두룩하다. 일 년 열두 달 가봐야 기별 한 번 주고받지 못하면 그냥 남남이다. 전화번호로만 박제된 존재까지 친구라고 일컫는다면 친구라는 낱말에 대한 모욕이다. 그러니 불필요하게 용량이나 잡아 먹는 스마트폰 속 냉담한 연락처일랑 당장 지워 버리는 게 낫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테지만 그런 상황을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이미 인연은 끊어졌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보다 건조하다.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이라는 의미를 가진 '관계'임에도 전혀 쌍방향적이지 않다는 거다. 히가시노 게이고 말로 돌아가,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음을 감지한 한쪽이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들 다른 한쪽이 무시하거나 냉담하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관계 회복에 혼자만 왜 애걸복걸해야 하는지 빈정이 상하면 절연 가속도는 더 붙는다. 한 이불 덮고 자던 부부조차 수틀리면 너 아니면 못 살까 보냐 당장이라도 갈라서는 판국에 친구라는 존재는 당연하게도 격조의 이랑이 깊게 파일수록 그 가치가 바래질밖에. 하여 "사람은 평생에 한 친구면 충분하다. 둘은 많고 셋은 문제가 생긴다"(헨리 아담스)라는 아포리즘이야말로 뼈를 때리는 탁견이다. 

   단념이 점점 빨라진다. 특히 교우관계는 맺고 끊기가 쾌도난마다. 한때 관계 단절이야말로 인생을 파탄내는 자충수라 벌벌 떨던 자로서는 섬뜩하리만치 돌연한 변신이다. 그렇다고 아주 느닷없진 않다. 상대방이 슬쩍슬쩍 드러내는 백안시, 도외시, 등한시 경시輕視 3종 세트가 마치 점과 선을 배합한 모스부호가 문자ㆍ기호로 나타나듯 그 사람 속내임을 간파하는 능력(이걸 경륜이라고 한다면 좀 서글프긴 하지만)이 길러지자 이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는 게 신상에 이롭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단념은 필연적으로 고립을 초래하지만 우정이라는 그물망을 촘촘하게 메우겠다고 남발하는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말들의 상찬 앞에서 내내 소화불량으로 고생하기보다는 차라리 낫다. 하여 멀찍이 떨어져 차라리 고독을 즐기기로 선택한 결정에 아직까지 후회는 없다. 

   인간은 졸아도 혼자 졸고 죽어도 혼자 죽는다. 혼자서 혼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졸아라

                                      고운기


점심때 구내식당에 내려가면

밥을 받는 동안 아는 얼굴들이 자꾸만 눈짓을 한다

식판을 들고 어정쩡하게 끼여드는데

마침 반쯤 넘게 먹고 난 다음이면

대체로 선배인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나는 신병훈련소 식사 때보다 더 빨리 수저를 움직여야 한다

제기랄, 속으로 짜증이 난다

혼자 먹게 내버려둘 수 없나

똥쌀 때 혼자인 것처럼


​그러나 이율 배반이다

나는 무리의 자식일 뿐이었다

학교라는 조직에 들어 넥타이 매고 출근하고, 학회에 가입하고, 문단에 나가고,

동인을 만들고 게다가 없던 모임마저 새로 만드는 데 동참하고, 

나는 거기서 먹이를 얻고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러면서도 귀찮다니, 혼자인 게 좋다니,

떠드는 건 아무래도 얄팍한 뒤집기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오며 곰곰 생각한다

혼자라는 희망은 나에게 분명코 허위였다

큰 먹이는 여럿이 모아 얻어내고

그 가운데 조금 내 몫 챙겨 돌아서며 안도했었다


​계단을 오르며

이미 구수하지 않은 밥 냄새를 뒤로하며

나는 반성한다,

졸 때 혼자인 것처럼

죽을 때 혼자인 것처럼

혼자서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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